두 얼굴의 조선사/ 조윤민 지음/ 글항아리 펴냄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실체가 전혀 딴판인 경우가 세상사에는 흔하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국권(國權)을 완전히 상실한 '조선'은 어떠했을까. 조선의 지배세력은 유학 정치 이념을 근간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내세웠다. 통치자가 어진 마음과 행위로 모범을 보이고 도덕규범과 교화를 통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인과 덕의 정치를 지향한다고 했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말인가. 그래서 저 멀리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이사크 포시위스(1618~1689)는 조선을 가리켜 유럽의 동쪽 먼 곳에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가 있다고 말했다. 마치 플라톤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나라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조선의 민낯은 '도덕이 꽃핀 나라'도 아니고 '청렴한 선비의 나라'도 아닌 '위계의 나라'였으며, 유학은 철저하게 지배계층의 지속적 이익을 담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고 폭로한다. 대동사회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사리사욕을 위한 계급정치를 펼치고, 도덕정치의 명분과 계급정치의 특권을 모두 누리고자 한 이들 지배층은 조선사회를 과도한 예와 명분의 사회로 만들어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피지배계층까지 스며들면서, 조선은 무려 500년이 넘게 지속된다. 중국의 경우, 진나라 이래 수십 개 나라 중에서 200년 넘게 존속한 나라는 다섯 나라뿐이며 300년을 넘긴 왕조는 하나도 없다. 조선과 같은 시대의 명과 청도 300년을 버티지 못했다.
다음은 탐관오리가 아니라, 도덕과 인품으로 이름난 조선의 명재상 황희 이야기다.
"임금이 안승선에게 일렀다. '황희가 교하 수령인 박도에게 토지를 청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박도의 아들을 행수로 들였다. 또한 태석균을 관리로 임명하는 데 힘을 썼다.(…) 그러나 황희는 이미 의정부 대신이며 또 태종께서 신임하시던 신하인데, 어찌 이런 일로써 파면하리오.'(세종실록 53권 중)
황희 정승이 이 정도라면, 뇌물 비리는 조선 관료사회의 관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조선 지배층은 백성이나 아랫사람이 관리의 부정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관료의 부정부패가 갈수록 극심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부분의 서민들은 '늑대(관리)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 이상으로 돈을 모으지 않았으며, 자처해 노비가 되기도 했다. 15세기에서 17세기 무렵엔 인구의 30~40%가 노비였다. 백성을 위한 나라는 없고, 그들만의 '천국'이 있었을 뿐이다.
조선 민중의 비참한 모습을 직접 목격한 외국인들은 이렇게 그 실상을 남겼다.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높이 받들어지고 넉넉한 곳에 처하며,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벼슬하는 것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았다. 다른 나라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국사를 다스리기 위함인데, 조선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오직 직업 없는 사람들을 봉양하기 위함이다."(량치차오)"관리들은 조세 수취로 백성들을 쥐어짜낸다. 정부는 하나의 거대한 강도가 됐다."(조지 클레이턴)
이미 망한 남의 나라 세 황제를 제사지내는 '대보단 제례'라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코미디도 벌어졌다. 명(明) 멸망 이후 청(淸)에 굴복하면서 조선사회 신분질서를 떠받치던 이념이 위기에 처하자, 조선 지배층은 이미 망한 명나라의 잔영에 예를 다함으로써 그들의 지배논리와 위계질서를 애써 지키려 했던 것이다.
1910년 일본이 병합늑약을 발표하면서 조선 500년 지배의 끝을 예고했을 때, 조선 지배층은 '대한제국 황제 즉위 4주년 기념식'을 열고 연회를 즐겼다. 조선 지배층의 마지막 모습을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대연회에 신하들이 몰려들어 평상시처럼 즐겼으며, 일본 통감 역시 외국 사신의 예에 따라 그 사이에서 축하하고 기뻐했다. 세계 각국의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은 한국 군신들의 달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은 기존의 한국사 연구 자료에 많을 것을 기대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조선 지배층에 대한 초상과는 다른 초상을 그려내려 했다"고 밝혔다. 36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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