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동보호국 복지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고 놀란 적이 있다. 오래전 둘째 아이를 낳고 몸조리할 때였다. 익명의 제보자가 우리 첫째 아이가 가정에서 학대를 받는 것 같다고 신고를 한 것이었다. 당시 첫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제보자는 아이가 혼자 스쿨버스를 타고, 겨울인데 반바지와 얇은 셔츠 차림으로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샌들을 신고 다닌다고 신고했다.
복지사는 나에게 가족 사항부터 미국에 오게 된 이유까지 줄 이은 질문을 했고, 나는 우리 가정이 단란하고 정상적임을 강조했다. 전화 인터뷰를 마치자, 복지사는 우리 집을 한번 방문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전화상으로 충분히 설명했으니 집에까지 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복지사는 일단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방문해서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나는 약속한 날, 집안 대청소를 하고 복지사를 기다렸다. 복지사는 두툼한 서류를 꺼내 들고 더 상세한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나에게 이런 방문으로 성가시게 해서 미안하다며 아무 문제없다고 보고할 것이라며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나를 고발한 익명의 제보자인 이웃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곧장 그러한 내 마음은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내 아이를 찬찬히 며칠씩 지켜보고 아동보호국에 전화까지 한 것도 어쩌면 이웃의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 이후 나는 아무리 바빠도 첫째를 더 꼼꼼히 챙기게 되었다. 열이 많아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는 아이를 붙잡고 긴 바지에 파카를 입히고 부츠를 신겨서 학교에 보냈다.
만약 그때 복지사가 우리 부부가 아이를 양육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면 아이를 나라에 뺏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젊은 부부는 아이가 잠든 사이 잠깐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잠에서 깬 아이가 베란다에 나가 우는 바람에 이웃이 신고해서, 아이를 나라에 빼앗기게 되어 변호사를 선임해서 초조한 법정 싸움을 치르기도 했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 교육을 받고 미국에 온 한인들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당황할 때가 많다. 한국의 옛말에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매 한 대 더 주라'는 말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체벌당한 것을 신고하면 곧장 법적 조치가 가해진다. 한국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아파트 열쇠로 혼자 집에 들락날락거릴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것 또한 아동 방치에 해당된다.
미국에서는 삐뚤어진 어른들의 만행으로 인해 약자인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면 보고하도록 교육을 시키고, 교사와 의사는 아이들에게서 학대로 인한 자국이나 증상을 포착하면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결석하거나 지각을 하게 되면 부모는 학교에 전화나 메일로 이유를 알려야 하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며칠간 결석할 때는 의사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3월이 되니, 새 옷에 새 가방을 든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 채, 지금도 어디에선가 학대와 방치 속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런 아이들을 찾아 나서는 각 기관의 발길이 분주하다. 그러나 이것은 복지기관, 학교와 단체들만의 일거리가 아니라 주위의 약자를 돌아봐야 하는 우리 모든 이웃들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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