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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通] '대구 토종 카피라이터'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 배우려는 대구 학생들에 무료 강좌…작년 미국서 26개 상 휩쓸었죠

김종섭 빅아이디어 연구소 소장이 자신이 만든 광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김종섭 빅아이디어 연구소 소장이 자신이 만든 광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2013 매일신문 광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종섭 소장(앞줄 맨 왼쪽). 매일신문DB
2013 매일신문 광고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종섭 소장(앞줄 맨 왼쪽). 매일신문DB
김종섭 소장의 공익광고
김종섭 소장의 공익광고 '대한민국에 독도가 없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일본에 독도가 있다면 그것은 일본이 아닙니다'

두 손으로 정중하게 건네는 명함이 특이하다. 한쪽 면에는 녹색 십자가만 음각돼 있고, 다른 면은 그냥 백지다. 어리둥절해하자 힌트를 준다. "한 번 꺼내 보세요."

과연 명함은 겉과 속이 달랐다. 봉투 속에 '진짜' 명함이 들어 있는 형태다. 턱을 괸 채 사색하는 사람의 녹색 실루엣 그림 위에 '브랜드 고칩니다 ㈜빅아이디어 연구소'라고 쓰여 있다. 해외 유명 광고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주목받는 카피라이터 김종섭(35) 씨 자신의 '숨겨진 가치' 같았다.

◆광고계의 '앙팡테리블'

김 소장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미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가 독도를 주제로 만든 공익광고 하나를 살펴보자.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있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태극기는 오른편 아래에 있는 곤괘(坤卦)의 음효(陰爻'끊어진 선) 하나가 지워져 있다. 태극기에서 사라진 이 음효는 일장기의 붉은 원 옆으로 옮겨졌다. '대한민국에 독도가 없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일본에 독도가 있다면 그것은 일본이 아닙니다'는 카피(copy)는 오히려 과잉 친절에 가깝다.

상업 광고에서도 그의 번뜩이는 재치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비포'(Before) 사진에서 여성이 입은 하얀 면 소재 티셔츠에는 차가운 표정의 남자 얼굴이 프린트돼 있다. 그러나 '애프터'(After) 사진에서 남자의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간다. 제6회 부산국제광고제 수상작인 이 성형외과 광고 카피는 '아름다운 가슴은 남자들을 미소 짓게 합니다'이다.

"공익적이든 상업적이든 광고에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독도 광고의 경우 대구 동성로에서 플래카드 퍼포먼스를 펼치던 도중 일본인이 다가와 사진 촬영을 하더군요. 이미지만 봐도 기획 의도가 잘 전달됐다는 리액션이지요."

그는 지난해 11월에는 '2015 아시아-태평양 스티비상'(Asia-Pacific Stevie Awards)에서 금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지붕은 가장 가까운 하늘입니다'라는 카피로 만든 금속기와 업체의 인쇄 광고였다. 마케팅 캠페인 부문 수상작 가운데 유일한 한국 작품이었다. 그는 앞서 2013년에는 제11회 '매일신문 광고대상'에서 창작 부문 특선에 뽑힌 바 있다.

◆내 꿈을 찾아서

빅아이디어연구소는 올해 매출 10억원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김 소장의 광고 인생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지만 첫해에는 겨우 100만원 남짓한 돈을 버는 데 그쳤다. 광고라고 하면 신문'방송 등 매체 비용만 생각하는 대구의 분위기 속에 백수인 듯 백수 아닌 삶이 이어졌다.

"광고 콘텐츠는 공짜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아이디어에 대한 대가를 달라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죠. 친구들이 취직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이 일을 그만둘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는데, 현실은 '나이 든 아기'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컸습니다."

그가 광고와 인연을 맺은 과정도 성공기만큼 파란만장했다. 대학만 하더라도 2000년에 신입생이 됐지만 졸업장은 2013년 2월에야 받아쥐었다. 대구'경북에 있는 대학 3곳과 미국 대학 1곳에서 1년씩 공부했다.

"고교 시절에는 한마디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성적이 늘 중간 정도에 머물렀거든요. 스스로도 저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글쓰기나 미술 등 창작 활동에는 재미를 느꼈지만 우리 사회가 정해 놓은 고교생의 가치는 수능 성적순이잖습니까?"

그가 광고에 눈을 뜬 것은 2006년에 3학년으로 편입한 미국 조지아주의 서던유니버스티에서였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경영학을 공부하던 중 들었던 광고학 수업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제로 만든 광고 안을 발표하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감이란 걸 느꼈지요. '아! 나도 꽤 능력이 있는 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원래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못된 성격인데 천직을 찾은 셈이죠."

◆지역 변화에 기여하고파

김 소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기부하고 있다. 광고를 배우려는 학생들을 위해 무료 강좌를 열고, 수강생의 광고제 출품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친다. 그의 말대로 '김종섭이란 개인이 광고 자체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광고 아카데미는 2014년 3월 출범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4시간씩 회사 사무실에서 무료로 광고를 가르친다. 1기 6명에 이어 2기 20명이 지난해 12월 수료했고, 3기는 오는 25일쯤 모집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교육생들이 미국 국제광고전에서 26개의 상을 휩쓸어 전 세계 교육기관 중 최다 수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주최한 세계기업가정신 주간 행사'에서 청년기업인상을 받았다.

"제가 유학을 갈 때 돈이 없어서 토플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강의를 듣는 조건으로 시내 외국어학원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그런 경험이 제가 아카데미를 여는 이유입니다. 대구시에서도 저희의 순수한 취지를 알고서 지난해부터 비용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른바 '고용 절벽' 앞에 좌절하는 취업 준비생들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것이다. '열등감도 아이디어로 연결된다'고 믿는 그 자신도 백수 시절 대구 시내 공원에 앉아 가상의 브랜드로 광고를 만드는 실전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저희 수강생들을 보면 가슴속에 불꽃이 살아 있습니다. 기름 몇 방울만 보태주면 활활 타오를 소질이 있지요. 서울의 유명 대학을 나와야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방의 한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엇을 배우기 전에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공부하십시오. 사람 곁에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삶을 살면서 축적한 다양한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김종섭은 누구?

'가장 좋은 카피는 카피라이터가 쓸 수 없다'는 광고 철학을 갖고 있는 김종섭 소장은 198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영남고를 졸업한 뒤 여러 대학을 거쳐 영남대 언론정보학과와 같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학위는 '남들이 원해서' 받았지만 종교학'영문학'경영학을 두루 배운 게 자신의 성공에 기틀이 됐다고 믿는다.

입소문이 나면서 회사는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대구는 카피라이팅에 대한 이해가 낮은 탓에 고객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기업'기관이다. 그는 "광고 아카데미를 통해 대구의 학생들이 고향에 뿌리내리면 우리 회사로서도 일거양득"이라며 "지역 광고의 새로운 길을 함께 개척할 인재들을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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