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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인공지능<상>] 알파고와 허사비스의 마음

윤은영 인지신경과학자. 한국뇌기능개발센터 원장.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영국 버밍엄대 인지과학 석사, 심리학 박사.
윤은영 인지신경과학자. 한국뇌기능개발센터 원장.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영국 버밍엄대 인지과학 석사, 심리학 박사.

요즘 신문에는 온통 알파고의 활약상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진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것 같다. 자존심이 상해 버린 것이다. 인간은 제대로 만들어진 특화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출발이다. 허사비스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인지신경과학자라는 굉장한 강점을 지닌 AI 개발자이다. 인지신경과학자로서 뇌에서 일어나는 학습 기제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이 대국 결과를 당연히 예상했을 것이다.

나는 인지신경과학자이다. 내가 만약 허사비스의 위치에 있다면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알파고 개발 초기 단계에서 품어야 할 의문이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세돌 9단이 과연 알파고를 꺾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알파고가 전승할 것 같은 느낌에 온몸이 저릿했을 것이다. 만약 이세돌 9단이 한 판이라도 이긴다면 허사비스는 어떤 창의적인 전략이 알파고를 패배하게 만들었는지, 알파고는 왜 그런 전략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는지 고민하고 다음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뉴스를 보니 카이스트에서 있었던 초청 강연에서 허사비스는 알파고의 약점을 알고 싶어서 이세돌 9단을 택했고, 이세돌 9단이 남은 대결에서 선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은 진심이다. 그래야 개발자의 역할과 알파고의 미래 방향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이제 우리의 생활 곁으로 왔다. 인공지능은 학습이 가능하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을 입력하고 저장하고 이미 축적된 지식에 연결한다. 또한 새로운 지식이 들어올 때마다 저장된 지식체계는 재구성된다. 그러면서 직관이라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보다 계산 능력이 빠르지 않고 학습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망각도 일어난다.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느끼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 능력은 영향을 받는다. 뇌는 학습이 일어나면서 착각도 하게 되고 기억이 지워지기도 하고 저장된 기억이 제대로 인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인공지능이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질 수 있다. 허사비스의 말대로 좋은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윤리적인 부분이 이슈화되어야 한다.

알파고가 이기든 지든 허사비스에게는 일거양득이다. 이기면 자신의 회사를 선전할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지게 되면 목표는 더욱 뚜렷해진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좋은 기회이다. 이번 대국을 보면서 가장 씁쓸한 점은 이세돌 9단이 구글의 대국 제안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승낙할 것이라고 허사비스는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사비스 자신이 얻게 되는 이익이 뻔히 보일 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구글의 마케팅 전략에 감탄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개발자로서의 허사비스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현재 그는 승리의 기쁨에 마냥 도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한다. 지금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고 더 기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계에 졌다고 충격에 빠질 일도 아니다. 애초에 대결이 될 수 없는 시합이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여 인간이 기계에 지배될 것이라는 우려감에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경쟁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이기느냐 지느냐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안 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지신경과학과 같은 여러 학문의 융합에 의해서 가능하다. 단지 계산 알고리즘을 잘 만든다고 해서 탄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착각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관련 과학 분야끼리 올바른 융합으로 기술을 개발하여 인간에게 진정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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