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이태하 대우정보시스템 대표이사

"우리나라가 IT강국? 휴대폰·반도체 좀 잘 만들 뿐"

▷1961년 경남 거창군 출생 ▷경북 고령초
▷1961년 경남 거창군 출생 ▷경북 고령초'고령중, 대구 성광고 졸업 ▷경북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IBM 차장 ▷㈜혁성정보시스템 영업총괄 상무 ▷㈜코마스 대표이사 ▷대우정보시스템 대표이사(현)

이태하(55) 대우정보시스템 대표이사는 정보통신(IT) 분야 영업과 경영의 달인이다.

30년 동안 IT 업계에서만 잔뼈가 굵은 그는 철저한 '약속 이행'과 '책임지는 자세'를 영업과 경영의 철학으로 삼았다. 그의 고객은 주전산시스템과 상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회사였고, 약속과 책임을 통해 고객의 신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첫 직장인 한국IBM에서는 10년 동안 연간 목표액을 100% 달성했다. IBM 연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두 번째 직장에서는 퇴직금을 영업비로 모두 쏟아 넣는 노력 끝에 3년 만에 첫 직장의 최고 연봉을 3배나 웃도는 금액을 받기도 했다. 위기에 몰린 두 번째 직장을 떠나 전문인력 15명을 데리고 안착한 세 번째 회사에서는 5년 만에 CEO로 올랐고, 10년 만에 회사 매출을 11배 이상 키우며 기염을 토했다. 결국 지난해 대우정보시스템의 피인수기업인 코마스의 대표에서 거꾸로 대우정보시스템의 대표이사로 영입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IT 업계에서 피인수기업 대표가 인수기업 대표가 되는 드문 선례를 남기며 경영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쪽팔리게 살지 말자'란 모토를 가진 경영의 달인, 이 대표로부터 IT 업계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 정부 정책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IBM에 어떻게 들어갔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가을에 일찍 졸업을 하게 됐는데, IBM 입사원서가 학과로 왔다. 학과에서 추천 서열 1위여서 가장 먼저 들어온 IBM에 원서를 냈고, 5명이 면접을 본 가운데 웃고 떠들면서 자유롭게 면접에 임한 내가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계 회사여서 진지함이나 딱딱함보다 자율적인 태도와 허심탄회함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일을 했나.

▶처음 3년가량은 행정 업무를 봤다. 그런데 IT 회사이다 보니 행정보다는 영업 쪽이 훨씬 더 발전 가능성이 있었다. 월급도 행정은 영업의 70%에 불과했다. 회사 내부 이동시험을 거쳐 영업으로 옮겨 실력을 발휘했다. 당시 대학, 금융회사, 자동차부품회사 등을 가리지 않고 1대당 10억원이 넘는 메인 컴퓨터(주전산기)를 보급했다. 주전산기를 넣고 상용 소프트웨어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됐다.

영업 성과를 크게 올렸다. 회사의 연간 목표액을 10번이나 달성했다. 연간 목표를 100% 이상 달성하는 '100%클럽(HPC)'에 9번, 100%를 훨씬 초과한 그룹인 '골든클럽'에도 1번 들었다. 입사 10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 연봉이 7천만원가량 됐다.

-좋은 성과에도 왜 직장을 옮겼나.

▶IBM에서 12년 10개월을 근무했다. 연봉도 높고, 영업 성과도 많이 올렸지만 한계가 있었다. 궁극적으로 서울지역 유력 대학 출신들이 회사 요직이나 임원을 차지하는 구조였다. 마침 IT 서비스 기술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업체로 옮기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직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나.

▶1999년 혁성정보시스템 영업 총괄로 스카우트됐는데, 영업비가 나오지 않았다. 연봉도 IBM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험이자, 기회라고 생각하고 IBM에서 받은 퇴직금을 1년 만에 모두 쏟아부으면서 영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3년 만에 큰 성과를 냈다. 영업총괄 상무가 됐고, 연봉도 2억원으로 올랐다. 이 회사로 옮긴 지 5년 만에 40억원이던 연 매출을 35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영업 직원도 당초 3명에서 60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IBM 제품을 주로 취급하던 회사가 'IBM 스캔들'에 휘말려 제품 취급 자격을 잃으면서 회사는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1년 동안 IBM이 아닌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반전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실력 있는 직원 15명을 데리고 또 다른 IT 전문회사인 코마스로 옮겼다. 여기에도 2005년 상무로 간 지 3년 만에 전무, 5년 만에 대표가 돼 지난해 9월까지 일했다. 공공'금융'제조'유통 분야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클라우드에 기반한 각종 소프트웨어와 보안'금융 솔루션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특히 2005년 매출 170억원이던 회사를 10년 만에 11배 이상(1천946억원) 키웠다.

-피인수기업 대표가 인수기업 대표로 영입됐는데.

▶대우정보시스템이 지난해 코마스를 인수하면서 소속이 바뀌었다. 코마스는 주전산시스템 인프라를 구축하고 상용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대우정보시스템은 여기에다 프로그램 개발까지 한다. 피인수기업 대표가 인수기업 대표로 된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지만, 기존 회사를 내실 있게 키운 경험과 신뢰성을 평가한 것으로 판단한다.

-대우정보시스템의 경쟁력과 향후 경영 방침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매출, 사업 분야, 고객 등 면에서 회사 규모가 제일 크다. 사업 내용도 주전산시스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보안, 컨설팅 등 IT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전문성을 다 갖고 있다. 토털 솔루션을 전 산업에 적용할 능력과 고객군이 있고, 회사는 IT에 모든 것을 건다. 공공 부문과 제조업 분야 시장을 바탕으로 교육'금융'에너지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시킬 것이다. 특히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2020년까지 아시아 최대의 독립 IT서비스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탁월한 경영 능력의 비결은.

▶IT 분야는 좋은 제품의 공급과 함께 운용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계(주전산시스템)를 납품해 잘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신용과 서비스가 중요하다. 좋은 제품의 컴퓨터를 공급한 뒤 서비스를 잘해야 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잘못을 즉각 인정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을 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약속 이행과 책임지는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하면 고객과의 사이에 신뢰가 쌓인다. 그런 측면에서 IT 업계는 두뇌가 뛰어나면서도 진실한 사람이 필요하다. 두뇌만 뛰어나면 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고, 진실하기만 하면 업무 성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절대 부당하거나 편법을 쓰지 않고 정당한 방법으로 영업을 하고, 회사를 경영해왔다고 자부한다.

-IT 업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전통 IT 분야가 어려워 이직률이 높다. 전통 IT 업계는 밑그림만 그리고, 그 수익은 애플,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가 다 가져가는 구조다.

대기업이 IT 자회사를 다 갖고 있어 시장 장벽이 높다. 좋은 솔루션을 만들어도 대기업 자회사가 방어벽을 치고 있다. 대기업이 모두 IT 자회사를 갖고 있는 것은 IT산업 발전보다 그 자회사를 통해 재벌 자녀들에게 재산을 증여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정부가 대기업 IT 자회사의 주식 가치가 올라가면 편법 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절대 IT 강국이 아니다. 휴대폰과 반도체를 좀 잘 만들 뿐이다. 이 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야 하는데 오라클, 아이비엠 등 솔루션 회사가 하나도 없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수출이 좀 된다고 IT 강국으로 착각하고 있다.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는 오라클, 서버는 IBM과 HP, 스토리지(데이터 저장소)는 EMC, ERP(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는 SAP가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SAP를 제외하고 미국이 전 세계 IT의 근저를 모두 다 가져가고 있는 셈이다. 대만 TSMC, 중국 폭스콘, 한국 삼성전자 등이 아시아권에서 그것을 하기 위한 부속품을 좀 잘 만드는 정도다.

-정부의 IT 분야 정책 지원은 잘 되고 있나.

▶이명박정부 당시 정보통신부를 없애는 등 IT 정책이 완전 허물어졌다. 현 정부도 미래창조과학부에서 IT를 다루고 있지만, 관심이 소홀하다. 정책 지원 인력이 부족하고 컨트롤타워도 약하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전혀 육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IT 업계의 발전 방향은.

▶우리가 먹고살 핵심 분야가 IT다. 정부는 당연히 주무 부처를 둬야 한다. 정부는 IT 관련 주요 아이디어나 독보적인 기술만 가지고도 벼락부자가 나올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의 장벽을 낮춰야 한다. 대기업은 IT 기술을 사지 않고 곧바로 모방하거나 핵심 인재를 스카우트해 기술을 도용하기 일쑤다. 우리나라도 알리바바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창조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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