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희창의 에세이 산책] 인간, 인공을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세 번이나 돌을 던졌다며?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진 거잖아?" "아니, 네 번째 이긴 거 보면 졌다고는 할 수 없지. 인간의 창의성을 따라오지는 못할 거야." "그래도 인공지능의 하루 학습량이 인간의 35년에 맞먹는다고 하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할 거야. 로봇에게 일 시키고 심지어 로봇하고 사랑하는 시대가 올걸." "너 로봇 살 돈이나 있냐?"

인간이 졌든, 개인 이세돌이 졌든 인공지능의 시대가 성큼 다가선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바둑으로 따지자면 멀리 중국 요임금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으니 오천 년 역사를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최소한 삼국지에는 바둑을 두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으니 이천 년은 족히 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열심히 공부해서 수천 년을 단숨에 따라잡은 게 아닌가.

바둑에는 우주가 담겨 있고 인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바둑을 두면서 치열한 삶의 자리를 확인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지혜를 터득하는 이성과 직관의 복합체라고 거창하게 설명하면 뭐 하겠나,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인간이 인공을 맞이하는 상견례처럼 여겨지는 자본 혼례식에 참여한 기분인걸. 그렇다면 인공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지닌 고수가 어딘가에 있어 놀고 있네 하며 웃고 계실지도.

이제 인간은 인공을 미워하거나 구애하면서 인공과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을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구현하고 있는 것 같다. '편리와 효용'의 원리는 도덕적 성찰이나 경제적 불평등의 관점을 앞서거나 무시하니까.

무인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소수의 활보 아래, 마트 계산대에도 인공지능에 자리를 뺏긴 이들의 구직 행렬이 벌어진다면 그게 편리한 세상일까?

"할아버지, 밥하는 거 배우셔야 해요. 할머니 안 계시면 밥통 스위치 누르는 거 모르면 굶으셔야 하잖아요. 세 개만 누르시면 되니까 꼭 기억하세요. 옆에 적어 놓을게요." 할머니께 치매가 와서 힘들어하시는 동네 할아버지에게 스위치 누르는 법을 알려 드리면서 '조만간 세탁기 돌리는 법도 가르쳐 드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니, 전근대의 삶부터 인공지능의 초현대까지 백 년이 공존하는 세상을 그려보게 된다.

미워하면서도 따라가고, 사랑하면서도 상처받고, 인간이 만든 인공이 결국 인간을 지배하고, 그런 세상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는 이들과 편리를 주장하며 맘껏 누리자는 이들의 바둑판 같은 인생을 지금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인공이 인간이 되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받아들이며 '준비됐나요?'를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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