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 안동의 보물을 찾다]<1>자연·역사·문화 담긴 안동의 길

걷는 곳마다 자연, 닿는 곳마다 역사

호반나들이길
호반나들이길
선비길
선비길
여왕길
여왕길
마의태자길
마의태자길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서면 이런저런 길이 나를 유혹한다. 토끼풀·망초꽃이 흐드러진 강변길을 만나기도,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한적한 산사로 향하는 길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번잡한 도심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서점으로 가는 길도 있다.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키르케고르가 1847년 제테에게 보낸 편지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심오한 영감의 상태, 모든 것이 오랫동안 걷는 길 위에서 떠올랐다'고 했다.

이렇듯 길은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로 펼쳐진다. 사람들은 길 위에서 수없는 세상을 만난다.

안동의 길도 다름 아니다. 강가나 산속·솔숲 사이에 난 오솔길, 돌담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 마을의 고샅길, 호젓한 산길,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들길, 강변에 펼쳐진 자갈길, 비 내린 황톳길의 진창길, 가로질러가는 지름길. '길'에서 알지 못했던 안동의 보물을 찾아 나서보자.

◆길, 자연의 향기'바람의 부드러움을 오롯이 느낀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에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다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돌아갑니다.(중략)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시 '길'이다. 생각하면 내가 걸어온 길이 안개 속처럼 아스라하기만 하고 걸어가야 할 길은 칠흑처럼 어둡기만 하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조차 아련하고 언제 종점에 다다를지 알 수도 없다. 산 넘고 물 건너 가야 할 길, 그 길이 아직 내게 남아 있으리라는 것만이 확실하다. 윤동주 시인에게 '길'은 칠흑처럼 깜깜하지만 분명 희망을 찾아 떠나야 하는 숙명이었으리라.

현대인들의 걷기 열풍은 '올레길' '둘레길'을 만들어냈다. 오랜 세월 자연의 품에서 숨어 있던 속살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길들이 전국에 즐비하다. 사람들은 건강과 여행, 트레킹 등 다양한 이유로 그 길들을 찾아 집을 나선다. 할미꽃이 흐드러진 '정선 뱅뱅이길', 수줍은 동백이 빼곰히 얼굴 내미는 '군산 구불길', 산수유 군락이 장관인 '지리산 둘레길', 개나리 너머 푸른 바다가 눈부신 '목포 유달산 둘레길', 매화와 벚꽃이 절경인 '순천 남도 삼백리길', 해안 절벽이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여수 하화도 꽃섬길', 산호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통영 바다백리길', 동백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한라산 동백길'.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이 제법 훈풍을 머금은 봄의 시작과 함께 전국의 길을 찾아 떠날 채비를 한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아무런 말 없는 덤덤한 걷기도 좋다. 자연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자연의 향기와 코끝으로 전해오는 바람의 부드러움을 오롯이 느끼기만 해도 좋은 일이다.

◆신도청시대 안동, 길에서 보물을 찾는다

바야흐로 걷기의 계절이 왔다. 대지가 기지개를 켜는 봄,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안동은 도청과 도의회 등이 이전해오면서 본격적인 도청 소재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신경북도청 시대'를 주도해, 경북의 문화'관광 중심도시로의 위상과 역할이 강조되는 시기에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안동시가 갖고 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자연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천혜의 인프라인 '길'을 지금까지 잘 조성해 놓은 문화'관광 콘텐츠와 어떻게 엮어낼 것인지를 고민할 때다.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전해져 오는 길을 비롯해 안동시가 전략적으로 만들고 있는 길 등 안동이 지닌 자연문화인 '길'을 찾아 소개하면서 안동이 지닌 보물로서의 가치로 만드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안동의 '길'은 신도청시대 도청소재지 안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안동의 또 다른 관광 인프라를 제공, 안동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역사성을 홍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퇴계의 철학과 삶을 품고 있는 '퇴계 예던길'은 안동의 대표적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 주변에는 도산서원과 도산구곡, 청량산과 왕모산성, 육사문학관 등 고려와 조선,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전해오고 있는 곳이다.

또, 하회마을 중심으로는 유교문화길이 잘 조성돼 있다. 병산서원을 출발해 낙동강생태학습관까지를 걷는 '여왕길', 구담습지에서 병산서원까지의 '선비길'이 고즈넉한 삶을 전해준다.

이 밖에 낙동강생태학습관에서 영호루까지 이어지는 '공민왕길', 안동호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는 지역 최대 인기 길인 '호반나들이길', 도산면 태자리와 용수사 주변에 전해오는 '마의태자길' 등이 명품 길로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역사'문화, 자연과 생태 아우르는 안동의 길

안동에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잘 조성된 낙동 수변공원이 세계적인 문화'생태관광지로서 시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각종 생활체육시설이 들어서 시민들의 건강을 다지는 공간이 되고 생태학습장은 어린 학생들의 탐구장으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는 라이딩과 마라톤, 파워워킹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낙동강은 이제 시민들의 행복지수를 더욱 높여주는 곳으로 변할 전망이다. 안동시가 잘 다듬어진 낙동강을 따라 올레길과 둘레길 못지않은 명품 산책로 조성에 나섰기 때문이다.

안동호반 나들이길은 안동댐 보조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돌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로(법흥교∼석빙고∼월영교)다. 40억원을 들여 법흥교에서 민속촌 내 석빙고까지 2㎞, 1.5m 너비의 산책로와 팔각정을 조성했고, 기존 월영교와 연결해 보조댐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이다.

유교문화의 길 가운데 생태공원을 낀 여왕길과 선비길은 낙동강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생태'학습장이다.

이 길을 걷다가 만나는 단호 절벽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강과 생태환경을 이해하기 좋은 장소로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면서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최적 코스다.

여기에 오토 캠핑장, 전통마당, 야생초화원, 텐트 야영장 등 모래와 백사장의 낙원으로 조성된 단호샌드파크도 있다. 생활관과 수련의 숲, 야외 집회장, 특성화 활동 수련장 등 남후면 하아리에 210억원을 들여 조성한 하아그린파크도 최고의 생태체험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병산서원에서 하회마을 간 선비길은 병산서원을 비롯한 서원과 서당이 있어 선조들의 얼과 행적을 느낄 수 있고, 낙동강을 끼고 조성된 아름다운 자연을 체험할 수 있어 가족과 함께 걷기에 좋은 길이다.

퇴계 이황 선생 등 조선시대 문인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퇴계 예던길 생태탐방로는 도산7곡(단사곡)과 8곡(고산곡) 사이의 학소대, 미천장담, 한속담, 벽력암, 농암종택, 월명담, 고산정은 물론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낙동강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등을 활용한 호반나들이길과 유교문화의 길, 퇴계 예던길 등 탐방로 개설에 나서는 중"이라며 "안동은 세계적인 문화, 생태,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춘 강변관광활성화를 통해 리버투어리즘 시대를 활짝 열어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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