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창을 팔 때는 "이 창은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고 했고, 방패를 팔 때면 "이 방패로 말하자면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다"고 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으면 어찌 되느냐." 상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창(矛)과 방패(盾)에서 유래된 '모순'(矛盾'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상태)이라는 말은 그렇게 나왔다.
익히 알고 있을 이 성어를 새삼 들먹인 것은 오늘날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이를 연상시켜서다.
세계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갖춘 미국 국방부는 '레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영어 '레드'에는 '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말 그대로 '레드 팀'은 국방부 내에서 가상의 적 역할을 맡고 있는 조직이다. 적이 되어 국방부의 안보 취약성을 뚫고 침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주 임무다.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을 개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보안 취약성은 다시 튼튼한 방패를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국방부는 '블루 팀'도 운영한다. '블루 팀'은 '레드 팀'의 반대로 보면 된다. 역할이 국방부 내 방어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국방부는 전 세계 해커들의 표적이다. 이들로부터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일이다.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 개발이 목표다.
다르면서도 같은, 동전의 양면이면서도 한 동전인 두 팀을 이용해 미 국방성은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다 갖춘 철옹성을 만들어간다.
그런 국방부가 여태껏 시도한 적이 없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공개적으로 '국방부를 해킹하라'고 나선 것이다. 4월부터 시작할 '핵 더 펜타곤'(Hack the Pentagon) 프로그램이다. 성공한 해커에게 상금까지 내걸었다. 해커들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방부를 해킹해 명성도 높이고 돈도 벌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국방부가 자신들을 해킹하라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내부 팀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카터 장관이 직접 나서 "군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최고 등급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유수의 IT 기업이 널리 사용하는 최고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내부보다 외부의 실력을 더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는 2014년 북한의 소니 픽처스사 해킹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북한의 민간 기업에 대한 해킹 능력 과시가 국방부의 보안 경각심을 한층 높인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IT 강국임을 자임한다. 그런데 국가 보안 시스템엔 구멍이 숭숭 뚫렸다. 최근 국내 외교 안보 라인의 주요 인사 수십 명의 스마트폰이 해킹을 당했다.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지난달에는 국내 2천만 명이 사용하는 인터넷 뱅킹 보안 SW 업체의 전산망을 북한의 해킹 조직이 장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4년에는 서울메트로의 서버가 해킹됐다. 북한의 해킹은 상시화했다.
해킹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정부는 북이 해킹 부대를 운영하고 있느니, 수천 명의 해커가 활동하고 있느니, 사이버 테러 방지법이 없느니 하며 변명거리만 찾았다. 북한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을 구하는데 정부는'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마련할 생각은 않고 창만 탓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해킹 팀은 지난해 8월 세계 각국 4천여 팀이 참가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열린 해킹대회(데프콘 대회)서 우승을 차지했다. 정부가 어찌 하느냐에 따라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모두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없는 것은 스스로의 보안 취약성을 인정하려는 용기와 이를 완전히 하겠다는 창조적 의지다. 사이버 시대, 보안이 국운을 결정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해킹을 허하라.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