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2016년 대구의 병신<丙申>사화

조선시대에 사화(士禍)라는 이름이 붙은 사건이 넷 있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 4년, 1498년의 무오(戊午)사화부터 1504년 일어난 갑자(甲子)사화, 1519년 기묘(己卯)사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0년 전쯤인 1545년의 을사(乙巳)사화까지 4대 사화를 이른다.

사화란 선비들이 반대파에게 몰리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정도로 큰 화를 입은 것을 말한다. 이긴 쪽은 권력과 부를 독점했고 진 쪽은 귀양과 죽음을 맞아야 했다. 사람, 파벌, 사상 등을 기준으로 패거리를 나눠서 벌이는 권력다툼이라는 현상 그 이면에는 정치'사회적 주도 세력 교체라는 큰 흐름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배 세력 재편의 과정에서 벌어진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었다는 게 후대의 평가다.

시곗바늘을 600년 가까이 앞으로 돌려보자. 새누리당 공천 이야기다. 겉보기에는 21세기판 사화라고 할 만하다. 역사적 평가는 후대로 미루더라도 구경꾼의 눈에는 조선시대 사화보다 나을 건 없다. 더 저차원으로만 보인다.

2008년 제18대 총선 한나라당 공천 때는 '친이명박'계가 칼자루를 쥐고 막춤을 췄다. 친박근혜계는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결국 '친박 학살'로 결론이 났다. 그해가 무자(戊子)년이라 무자사화라고 부른다. 수족들을 공천에서 잃고 박근혜 의원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4년 뒤인 2012년 제19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 때는 '친박'에 의한 친이의 보복'학살 공천이었다. 4년 전의 주역들은 이명박이라는 현재 권력이 아닌 박근혜라는 미래 권력을 배경으로 한 친박들의 칼에 날아갔다. 친이 중 생존자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임진(壬辰)사화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4년 전 칼자루를 쥐었던 이재오 의원은 칼날 앞에서 수족과 식솔들을 모두 잃고 겨우 목숨만 건졌다. 당시 공천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던 터라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국회의원이 누가 되든 대통령만 박근혜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4년이 지나 제20대 총선 공천의 계절이 돌아왔다. 박 대통령 임기가 2년이나 남아 있어 칼자루는 여전히 친박 몫이다. 막판으로 갈수록 죽어나가는 숫자는 더 많다. 맨 마지막 순서인 대구에, 누굴 공천하든 어떻게 공천하든 무조건 1번만 찍는다는 대구에 탈락자가 몰려 있다. 전국 평균치를 높이기 위해선지 아니면 대구 의원들이 만만해선지, 대구 유권자를 너무 믿은 탓인지 무더기로 사망자가 나왔다. 줄줄이 초상이다. 이름하여 병신(丙申)사화다.

공천의 기준이랄 것도 없다. 대통령 눈 밖에 난 사람이 배제 0순위고, 실세와 친하게 지내지 못한 사람이 탈락 1순위다. 쓴소리의 주인공들도 이름에 '돼지꼬리'가 씌워지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그물도 통과해야 한다. 이 위원장이 4선을 하면서 대구에서 '편하게 즐기는 동안' 사이가 틀어졌던 대구 의원들은 이 위원장의 사감(私感)이 작용할까 우려했다.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공관위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이 위원장이 대구 의원들 다수의 배제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했다. 그래선지 시나리오(여의도에 돌아다니는 지라시나 살생부와 새누리당 공천 결과는 흡사하다)대로 진행되는 '청부' 공천인데 무슨 기대를 하겠느냐는 자포자기성 이야기도 들렸다.

이 대목에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구경꾼의 촌평이다. 이 위원장과 친박 핵심들이 공천 기준으로 제시한 정체성에 대해서다. 요점만 말하면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모두 박 대통령과 말과 생각이 같은 '아바타'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헌법기관이라는데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아바타들로만 채워져서야 되겠나. 2년 뒤 대통령 임기가 끝이 나면 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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