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문학노트] 꿈과 현실은 상보적이다 -김형경의 '성에'②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존재한다면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장면일 거야. 불화와 불만과 불평등이 없는 곳, 그리하여 어떠한 갈등도 없고, 당연히 삶의 에너지도 없는 곳. 바로 이 죽음의 상태 말이야. (김형경의 '성에' 중에서)

한 남자가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고 결혼한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고 그 이외에도 몇몇 여자가 있다. 삶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특별하게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다. 능력도 있으며 현실에도 충실한 그런 남자다. 한 여자가 있었다.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은 상태다. 아직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거부할 생각도 없다. 물론 그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도 없다.

남자와 여자는 우연히 차에 동승한다. 둘은 고속도로를 달린다. 우연한 일탈. 그냥 직장동료일 뿐인 두 사람의 일탈. 고속도로는 갑자기 내린 폭설로 통제되고 둘은 휴게소에 갇힌 상태가 된다. 일탈의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둘은 고속도로 뒤쪽으로 가 보기로 한다. 물론 거기에도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산속으로 들어간 둘은 폭설 속에서 길을 잃는다. 점점 커가는 불안감 속에서 둘은 내부 이야기에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내가 삶을 영위했던 귀틀집을 방문한다. 남자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죽음(시체)을 만난다. 죽음을 대면한 공포. 그 공포 속에서 둘은 서로를 탐닉한다. 인간이 지닌 금기의 대표적 행위인 죽음과 성을 함께 나눈다. 성과 죽음이 동일하다는 확신이 드는 지점까지 이를 정도로 쾌락에 집착한다.

7일 동안의 사랑. 하지만 그들의 삶은 이미 끝이 예정되어 있다. 약혼자가 있고, 남자친구가 있으며, 폭설은 그칠 것이며, 눈은 녹을 것이기 때문이다. 7일 후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서 사라진다. 여자는 앓는다. 그 앓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여자의 내부에서 7일이라는 시간이 꿈으로 승화될 즈음 "얼마 정도면 결혼할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남자친구와 결혼한다. 딸을 낳는다. 결국 7일 동안의 일탈은 그냥 일탈이었던 셈이다. 현실 속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여자의 내면은 그 7일을 잊어본 적이 없다. 상처일 것만 같았던 그것이 그리움과 기다림, 나아가 하나의 꿈으로 여자에게 자리 잡는다. 12년 후, 우연히 신문에 난 남자의 글을 보면서 여자는 남자와 재회한다. 그리고 그들은 인정한다. 7일 동안의 삶이 지워진 것은 아니라는 걸.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12년을 살 수 있었다는 걸. 여자와 남자는 7일을 꿈으로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실상 7일은 그들에게 이미 현실이 아니다. 꿈, 환상일 뿐이다. 기억으로 남기기에는 너무나 아프지만, 결코 남루하지만은 않다. 환상이 사라진 현실은 사실상 남루하다. 물론 현실이 사라진 꿈도 허망하다. 남루함과 허망함만으로 삶이 결정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결국 꿈과 현실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는 데서 새로운 방향이 모색된다. '성에'에서 말하려는 것도 그것이 아닐까?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수록 의미가 크다. 그래야 영원히 꿈으로만 남을 수 있으니까. 결국 우리는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꿈을, 환상을 현실과 무관하며, 허황된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 마음껏 빛나고 아름다운 것. '아쉽고 허망하고 박탈당한 것들'이라는 소제목으로 소설이 시작되어 '빛나고 충만하며 서러운 것들'로 마무리하는 김형경의 마음도 거기에 있었을 게다. 현재 우리의 삶은 분명 아쉽고 허망하며 박탈당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삶을 빛나고 충만하며 서러운 것들로 채워가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진정한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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