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원책의 새論새評] 국민은 알파고가 아니다

전원책 칼럼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새누리당 공천과정 알파고와 비슷한 형태

배후자가 입력하는 대로 움직이고 계산

국민의 선택지를 권력자가 바꿔선 안돼

분노할 줄 아는 대중이 무언가 보여줘야

도하(都下) 신문들 1면에 굵은 활자로 '막장 드라마'라고 쓰고 있다. 20대 총선 여당 공천 얘기다.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완장도 이런 완장이 없다. 마치 식민지 총독인 양 서슬이 퍼렇다. 내놓고 이렇게 목에 힘을 주는 완장은 보지 못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면서 대등한 경기라도 벌일 것처럼 하더니 이건 일방적 경기다. 비박은 쥐 죽은 듯 찍소리 못 내고 꼼짝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무대(김무성 대표)가 발목이라도 잡힌 게 있나?" 돌아온 대답은 자기도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크게 반작용(反作用)을 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도 아닐 것이다. "오늘까지만 참겠다"라고 한 지가 오래전인데도 그는 아직도 '참는 중'이다. 아마 그도 공천 관리만 한다던 공천관리위원회가 이렇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을 휘두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싸움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적어도 민주정(民主政)이라면 민주적 절차를 흉내라도 내야 할 게 아닌가?

살생부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진박'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대통령 호위대' 마케팅을 벌이면서도 절대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했을까? 가슴속에 모두 '살생부 공통분모'를 품고 있으면서 '그런 문서는 없다'고 하니 국민만 기가 막히는 것이다. '친박 만찬'을 벌이고 그 자리에서 '유승민과 이종훈은 자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무대의 책사(策士)라는 사람이 정두언을 만나 살생부 얘기를 한 게 '덜컥수'가 됐다. 보기 딱한 공방 끝에 김무성 대표가 사과했다. 그리고 정두언은 살아남았다.

그다음 윤상현 막말 파동이 나왔다. 김무성 대표를 두고 '죽여버려라'고 한 것이다.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려 한 거여." 시정잡배나 했을 법한 말이 생생히 전파를 탔다. 친박 좌장은 취중 실언이라며 호도하기 바빴고, 공관위원장은 취중 사담(私談)은 공천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대충 뭉개려 든 것이다. 김 대표의 살생부 파동과 바터제로 하려는 것 같다는 추측기사도 나왔다. 하루 몇만 표씩 날아간다는 원성이 빗발치자 공관위는 마지못해 윤상현을 잘랐다.

그러나 이건 오산(誤算)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윤상현이 형이라고 언급한 두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보다도 전화 상대방이 누군지 밝혀야 한다. 이 네 사람이 커튼 뒤에서 공천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윤상현만 '죽인다면' 그건 나머지 세 사람에게 턱없이 면죄부를 준 게 된다. 그들을 공개하고 처단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끝장났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 커튼 뒤의 인물들이 권력에 취해 있다는 걸 믿는다. 대통령 엄호를 명분으로 지금 칼춤을 추는 중이다. 오로지 '우리 편이냐' 여부가 잣대가 되고 있다. 살생부도 이런 추잡한 살생부는 없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무엇으로 담보되는가? 권력의 정당성 근거는 오직 선거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실제 행한 정치적 행위는 기껏 투표소에서 제시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투표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선택지를 권력자가 제 맘대로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게 민주주의라면 우리는 왜 피를 흘리면서까지 이 '더러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국민에 대한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구글이 만든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다고 해서 화제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라지만 입력하는 대로 계산하고 움직이는 컴퓨터에 불과하다. 요즘 공천과정이 딱 알파고다. 입력하는 대로 움직인다. 배후의 그는 신이 났겠지만,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았으면 한다. 권력에 아첨하고 부역(赴役)하는 알파고는 많지만 국민은 결코 알파고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 대중은 분노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무언가를 보여줄 줄도 아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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