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무스탕:랄리의 여름

자유분방한 다섯 소녀, 반란을 꿈꾸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었고,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한 기대작이다. 아마도 지난해 나온 데뷔작 중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도발적이고 신선한 영화다. 터키의 신예 여성 감독 '데니즈 감제 에르구벤'이 터키의 작은 외딴 마을에 사는 다섯 자매의 일상을 활기 있게 그린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터키 이네볼루를 배경으로 자유롭고 길들여지지 않은 다섯 소녀가 특별한 여름을 겪는다.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삼촌의 보호 아래 다섯 자매는 평화롭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달콤한 첫사랑이 진행 중인 첫째 소냐, 우직하고 묵묵한 성격의 둘째 셀마, 감수성 넘치는 셋째 에체, 착하고 순종적인 넷째 누르, 다혈질이지만 따뜻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막내 랄리. 이들 자매는 늘 함께하며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자매애로 가득하다.

이들은 어느 날 좋아하는 선생님이 전근을 가게 되자 울적해진 랄리를 달래기 위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자아이들과 함께 물장난을 친다. 이게 마을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게 된다. 그 후 소녀들은 외출 금지를 당하고 집안에 갇힌 채 할머니로부터 신부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맞선이 시작되면서 소녀들은 서로 이별해야 할 처지가 된다.

영화는 웃음과 눈물, 희극과 비극이 조화를 이루며 유머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다 후반부로 가며 진지한 성장 드라마로 바뀐다. 젊은 감독의 작품답게 세련미는 덜하지만 패기가 넘친다. 이야기에는 감독의 자전적 요소도 가미됐다. 서사는 이슬람의 보수적 전통을 지키려는 기성세대와 이에 반발하는 어린 여성들의 작은 반란이 충돌을 일으키며 진행된다.

영화는 독립적이고 현대적인 막내 랄리의 시선에서 언니들과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정제되지 않은 채 어수선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꽤나 비밀스럽고 신비롭다. 어려서 잘 이해되지 않는 어른들의 대화법과 때때로 성적인 상징을 발견하면서 관객들은 충격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는 친절하게 장면을 넣어 설명하지 않고, 툭툭 건너뛰면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전개 방식 때문에 영화는 빠른 속도감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허를 찌르며 긴장감도 높인다. 관객의 상상과 다르게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낯선 이슬람 문화, 그리고 보편적인 현대 여성들의 자유를 향한 갈망의 행동을 지켜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축구에 열광하는 터키에서 열혈 관중의 난동을 막고자 남성의 경기장 출입을 금지하고, 여성과 12세 이하 어린이들만 입장시켰던 2011년 터키 프로축구팀 페네르바체 대 아키사르의 '금남' 축구 경기가 실제 에피소드로 등장해 극적인 재미를 더한다.

금지된 첫사랑의 짜릿함, 순결한 처녀임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의식, 부모들의 의사로 결정되는 청혼 관습과 강제결혼 등 보수적인 전통에 대한 묘사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개성 넘치는 소녀 각각의 이야기와 감성을 담아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예상치 못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서 랄리와 자매들은 한층 성숙해질 것이다.

임신 중 촬영을 했다는 감독의 경험과 다섯 자매 역 배우들의 캐스팅 비화 역시 놀랍다. 에르구벤 감독은 신비로운 셋째 역의 아역 배우는 한 단편영화에 출연한 모습을 인상 깊게 보고 시나리오를 써나갔고, 무뚝뚝한 둘째 역의 배우는 비행기 안에서 즉석 캐스팅했으며, 다른 소녀들은 오디션 과정을 거쳐 선발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기가 처음인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그러나 비직업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환상적이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 같은 자연스러움이 생생함을 더욱 살린다.

보수적인 이슬람 공동체에 대한 묘사, 터키의 아름다운 풍광, 아름다운 소녀들 하나하나를 개성적인 인간으로 포착한 재기 넘치는 카메라, 그리고 코미디, 스릴러, 성장 서사를 복합적으로 버무려 그 안에서 웃음과 슬픔을 담담하게 채워낸 각본 등 이 영화는 여러 영역에서 새롭다. 터키의 주목할 만한 여성감독의 등장에서 '코즈모폴리턴'으로서의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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