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경북의 원전<原電> 희생에 응답하라

2005년 3월, 지금으로부터 꼭 11년 전 '방폐장 특별취재팀'으로 활동했다. 당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은 국내 최장기 미해결 국책 사업으로 '국민 갈등'의 상징이었다. 우리 정부는 1986년부터 중'저준위(원전 정비 과정에서 사용한 덧신이나 장갑, 작업복 등) 방폐장 건설 계획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로 무려 19년간 번번이 무산됐다. 최악의 사태는 2003년 '부안'에서 발생했다. 정부가 방폐장 부지로 전북 부안군 위도를 선정하자, 주민들은 극렬히 저항했다. 주민 160여 명이 사법 처리됐고, 결국 정부는 방폐장 건설을 포기했다.

2005년, 국가 방폐장 정책은 새 국면을 맞았다. 정부는 방폐장을 떠안는 지자체에 천문학적 재원(55개 사업, 3조4천290억원)을 지원하겠다며 부지 선정을 재추진했다. 경북에서는 울진, 영덕, 포항, 경주 등이 후보지로 오르내렸고, 매일신문 특별취재팀은 후보 지역의 민심을 현장취재했다.

취재 당시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상상 이상이었다. 면사무소, 마을회관에서 삼삼오오 만난 주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아도 철저하게 속았다"고 치를 떨었다. "첫 원전사업에서는 대규모 공장을 주겠다며 속였고, 주민들이 알아차렸을 땐 아무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고 원망했다.

방폐장은 달랐을까? 또 속았다. 2005년 11월 경주는 투표율 70.8%, 찬성률 89.5%의 압도적인 지지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침체한 지역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뜻과 의지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이긴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했던 지원 사업은 지난 11년간 헛바퀴를 돌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정부가 약속한 55개 지원 사업의 이행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원전이 혐오시설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례에서 보듯 한 번 사고가 났다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다른 지자체가 혐오시설이라며 원전 반대를 외치는 사이 경북은 국내 원전 24기 가운데 경주'울진에 각 6기씩, 모두 12기를 끌어안았다. 2030년까지 영덕 2기, 울진 4기가 또 들어선다.

이 시점에서 더 큰 문제는 원자력산업의 안전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 정책이 정작 경북은 비켜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원자력 안전'연구 시설이 국내에 17개나 있지만, 경북엔 하나도 없다. 원자력 하드웨어(혐오시설)는 경북이 떠안고, 소프트웨어(R&D) 인프라는 수도권이 챙긴 셈이다.

이제 정부가 경북의 원전 희생에 답할 차례다. 대체 언제까지 신뢰를 저버릴 것인가. 지난 2012년 울진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전이 많은 경북에 원전 관련 연구개발 기능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이른바 원자력 클러스터는 전국 최대의 원전을 떠안은 경북의 새로운 미래이자 희망이다. 경북은 앞으로 국가가 추진하는 원자력 분야의 안전'연구개발 시설을 기반으로 공공기관, 민간기업, 교육기관 등을 집적해 고용, 관광, 산업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불어넣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올 상반기 내 입지 결정을 추진하고 있는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소'(원해연)다. 앞으로 70년간 우리나라에서 수명이 다하는 원전을 해체하는 데에는 무려 14조원의 비용이 든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원전 해체 기술은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 대비 70% 수준에 불과해 한국형 해체 기술 개발이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경북은 이 같은 원해연 입지의 최적지다. 경북이 지역의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원전과 방폐장 등 국가 원자력 정책을 모두 수용한 결과다. 원해연을 시작으로 국제원자력인력양성원, 제2원자력연구원, 원자력기술표준원 등 연구개발 인프라가 함께할 때 경북이 구상하고, 정부가 약속했던 원자력 클러스터의 꿈이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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