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우는 우레
장유병
조물주는 말이 없어도 생각이 다 있는 거라
추위가 끝장나면 봄이 오게 되어 있지
울긋불긋 온갖 꽃들 여기저기 늘어놓고
우르르, 우르르 쾅, 쾅, 새 우레를 기다리네
造物無言却有情(조물무언각유정) 每于寒盡覺春生(매우한진각춘생) 千紅萬紫安排着(천홍만자안배착) 只待新雷第一聲(지대신뢰제일성)
*원제: [신뢰(新雷)]
도대체 봄은 어디에서 오는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온다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봄은 꽁꽁 얼어붙은 땅 밑에서 온다. 겨우내 그 춥고 어두운 땅 밑에서 천만의 새싹과 1억의 꽃잎들을 만들어놓고, 디데이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벌떡 일어나 화들짝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우릴 가둔/ 겨울밤도/ 내일이면/ 끝이야// 초록빛/ 도화선에/ 봄의 불꽃 끌어당겨// 땅거죽/ 절절 끓도록/ 펑펑 터져 버리자고'. 서정택 시인의 시조 [꽃들의 모의]다. 그러니까 꽃들은 지난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땅 밑에서 뜨겁게 혁명을 모의해 왔다. '땅거죽이 절절 끓어오르도록 찬란하게 펑펑 터져 버리자'는 게 혁명군인 꽃들의 모의 내용이다. 정황으로 보아 내일이 그 혁명의 디데이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가 다 끝났다 해도 혁명이 그냥은 오지 않는 법. 스위치를 켜야 전등의 불이 확 들어오듯이, 봄의 스위치를 누군가가 눌러야 비로소 고물고물, 꼬물꼬물, 꿈틀꿈틀 거리던 봄이 와아~, 우지끈, 으샤으샤 총궐기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봄의 스위치를 힘껏 눌러 혁명의 횃불을 높이 드는 그는 도대체 누군가? 혁명이 필요한 시대를 살았던 청나라의 시인 장유병(張維屛. 1780~1859)의 한시에 등장하는 신뢰(新雷)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뢰는 새해 새봄에 새로 쾅쾅 치는 우레를 말한다. 우레는 여름철에 치는 것이 보통이지만, 봄철에도 실로 격렬하게 칠 때가 있다. 물러나는 겨울의 차가운 기운과 다가오는 봄의 따뜻한 기운이 거세게 몸싸움을 벌이면서 와장창 한바탕 맞장을 뜰 때가 바로 그때다. 봄은 바로 그 난데없이 쾅쾅치는 봄날의 우레가 신호탄이 되어, 아 냅다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
작품 속의 봄은 혁명을 일으킬 모든 준비가 완전히 다 끝난 상태다. 세상을 뒤흔드는 우렛소리가 우르르 쾅쾅 터질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그 우렛소리를 신호탄으로 하여 잠 덜 깬 개구리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고, 그 한없이 부드러운 '강철 풀잎'들이 영차영차 언 땅을 뚫고 천지간에 뾰족뾰족 돋아날 게다. 천산 만산에 맨발 벗고 뛰어나온 온갖 꽃들이 한바탕 광란의 축제판을 벌이게 되리라. 겨울아, 너는 이제 죽었다. 저리 썩 물렀거라, 겨울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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