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없다. 포기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꿈꾸는 것조차도 사치라는 N포 세대. 2030세대들의 우울한 현실은 대학가 동아리 문화까지 바꾸어 놓았다. N포 세대가 '헬조선'과 '흙수저'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취직이다. 따라서 취업과 관련된 대학동아리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직장이 지상 과제'가 된 시대, 대학가 동아리 풍속도를 짚어보았다.
◆취업·스펙·커리어 동아리 뜨고
최근 대학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동아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취업, 스펙, 커리어 관련 모임들이다.
예전에 외국어, 전공을 공부하던 스터디 모임에서 벗어나 자격증, 특정기업 대비반 등으로 특화하고 있는 것이다.
계명대에서 만난 김수민(영어영문 4년) 씨는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토익, 공무원, 언론사 준비반처럼 희망 진로가 유사한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벤처'창업동아리 등 일부 인기 동아리는 수십 대 1의 경쟁을 거쳐야 하는 곳도 있다. 입회 자격,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 '동아리 고시'라는 말도 생겨났다.
영남대 총동아리연합회 하주영 기획국장도 "어학, 자격증, 봉사활동 같은 실용 동아리는 매년 2, 3배 정도 지원자가 몰리지만 교양, 예술, 학술 분과는 정원을 채우기 급급한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사회과학·철학·인문·예능 동아리 문 닫을 판
면접과 시험까지 치르는 동아리가 있는가 하면 정원 충원을 염려하는 동아리도 많다. 우선 철학, 사회, 노동 문제를 연구하던 사회과학 동아리들의 퇴조가 뚜렷했다. 공연이나 예술 쪽 동아리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 X세대 등장 이후 한때 호황을 누렸던 힙합, 재즈댄스, 밴드 동아리들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10일 영남대 총동아리회관을 찾았을 때 게시판에는 밴드 연주자 모집 공고가 붙어 있었다. 지역 대학교 대부분 밴드들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한다.
'고사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은 동아리도 꽤 많았다. 총동아리회관에서 만난 한 학생은 "하회별신굿놀이, 날뫼북춤 등 전통 풍물동아리나 고적답사 같은 학술모임 상당수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다가 4, 5년 새 활동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영남대 다문화연구원의 이철우 씨도 "대학 시절 답사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전국 유적지를 다 돌았는데 몇 해 전 답사동아리가 문을 닫았다는 말을 듣고 무척 씁쓸했다"고 말했다.
◆음악 밴드 활동…학과 공부 '두 마리 토끼' 다 잡아야죠
대학가의 우울한 동아리 문화와 달리 소신 있게 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생도 있었다. 영남대 밴드 '코스모스'의 보컬 이진석(국제통상학부 항공운항계열 2년) 씨는 "음악과 취업 준비는 충분히 병행이 가능하다"며 "내가 원하는 밴드 활동과 학과 공부를 균형 있게 해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소신 있게 말하는 그의 용기가 무척 부러웠지만 그를 칭찬하기에 N포 세대들의 우울과 한숨이 너무 깊고 길었다. 캠퍼스에 동아리 부스가 펼쳐지고 본격 신입생맞이가 시작됐다. 실용과 비실용, 스펙과 끌림 사이에서 새내기들의 갈등이 시작될 것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기에 'N포 세대'에게 봄은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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