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합격자 수가 전부는 아니다." 매년 지역별 서울대 합격자 수가 공개될 때마다 교육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대구의 서울대 합격자 수가 계속 줄고 있음에도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물론 대구 교육의 질을 단순히 서울대 합격자 수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숫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대구의 교육 현주소를 평가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3학년도 서울대가 수시모집에서 특기자 전형을 일반전형으로 바꾸고 모집인원의 약 80%를 선발했다. 이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서울대 문호를 대폭 확대한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서울대 수시에서 일반고의 비중은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서울대가 수시 합격자를 발표하며 함께 공개하는 고교 유형별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합격자 중 일반고 출신의 비율은 2014학년도 46.31%에서 2015학년도 50.62%로 크게 상승했고 2016학년도에도 50.61%로 절반을 웃돌았다.
서울대 수시 규모는 전체모집 대비 2014학년도 83%, 2015학년도 75%, 2016학년도 76%다. 정시보다는 수시 비중이 크고 수시는 100% 학생부 종합전형 체제다. 서울대의 전형에 비춰 보면 서울대 진학 실적은 정량평가 위주인 수능시험 중심의 평가 방식에 무게중심이 있는 게 아니다. 단위 학교의 색깔을 바탕으로 그 학교가 길러내고 싶은 인재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의 결과물이 서울대 합격자 수로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입시의 흐름이 정시 중심에서 수시 중심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의 경우 서울대 진학 실적이 대폭 향상된 사례를 볼 수 있다. 특히, 인천의 경우처럼 수능시험 성적에 비해 서울대 진학 실적이 두드러지는 지역과 학교가 새로이 나타나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고교 유형이 다양해지고 고교 선택제가 시행되면서 각 고교의 교육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얼마나 진로와 진학에 기반한 교육과정을 얼마나 다양하게 짜고 시행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경쟁력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수능시험 위주의 정량평가보다 정성평가 위주의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입의 대세가 된 현재 상황에서 서울대 합격자 수는 지역별, 단위 학교별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구의 서울대 합격자 수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교육 당국이 늘상 하는 소리는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많아 서울대 합격자 수가 준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성구 몇몇 학교에서 하는 얘기였는데 이젠 대부분의 학교가 이 같은 말을 한다. 대구 학생들이 충분히 서울대에 합격할 만한 학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의대로 진학하는 바람에 지역의 서울대 진학 실적이 떨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2013학년도를 기준으로 서울대 합격자 수를 파악해 보면 대구과학고의 서울대 합격자가 없었던 2013학년도에 지역의 서울대 합격자 수는 134명이었다. 합격자 점유율로 따지면 3.96%. 이후 대구과학고 출신을 제외한 채 서울대 합격자 수를 꼽아보면 2014학년도 116명(점유율 3.33%), 2015학년도 126명(3.62%), 2016학년도 106명(3.06%)이다. 점유율을 따졌을 때 진학 실적이 완연히 하락세를 그린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의대 선호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2013학년 이전에도 의대 선호 현상은 여전히 있었지만 지금처럼 서울대 실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성구에서 의대를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의 경우 여전히 서울대 합격자 수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경신고의 서울대 합격자 추이를 보면 2011학년도 13명→2012학년도 10명→2013학년도 15명→2014학년도 10명→2015학년도 16명→2016학년도 11명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를 보면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이 증가한다고 해서 서울대 합격자 수가 줄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비약이 심한 것이다.
서울대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서울대 평가 시스템을 보면 '대구의 교육 시스템이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 몇 년 동안 대구의 서울대 합격자 수를 보면 학교별 합격자 수는 차이가 나지만 학교별 순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지역의 대다수의 학교가 수시 체제에 맞춰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변화를 모색하는 데 소홀히 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매년 지역별 서울대 합격자 수가 발표된 후 언론에서 지역별로 예년과 다른 우수한 성과를 낸 학교가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대구에선 이러한 학교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는 대구의 교육 경쟁력이 고착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전환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대구의 교육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개선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더 이상 대구과학고의 실적을 포함한 전체 실적을 따지면 지역의 교육 경쟁력이 있다고 포장하기보다는 지역 각 학교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에 더해 개별 학교가 자신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똑같이 서울대에 합격하더라도 수험생이 속한 학교의 경쟁력에 따라 합격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각 학교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의 학교소개서 양식을 보면 단위 학교가 속한 지역의 특성과 함께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 소개하게 되어 있다. 각 학교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해당 학교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교육과정에 맞는 수업 방법과 평가방법을 시행한 뒤 이를 학교 소개서의 교육과정 소개 공간에 적어낼 수 있게 된다면 대구의 교육 경쟁력이 예전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기영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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