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충신과 간신

내 일 망령된 줄을 내라 하여 모를쏜가

이 마음 어리기도 임 위한 탓이로세

아무가 아무리 일러도 임이 혜여 보소서

 

고산 윤선도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다. '오우가' '견회요' '만흥' '몽천요' '어부사시사'와 같은 작품들은 각종 시험에 많이 출제되었지만, 여전히 출제 유력 작품 목록에 올라 있다. 출제자들이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일단 작품의 분량이 출제하기에 적절하고(출제자들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어려운 한자를 많이 쓰지 않아 학생들의 수준에 적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당시 양반들은 상투적인 표현과 고사를 인용하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개성이 없는 반면, 고산의 시조는 우리말의 멋을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육적인 차원에서는 문학성과 별도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문학성이 우수한 작품을 쓰더라도 작가의 행적이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면 시험에 출제하기가 어렵다. 그 점을 고려하면 고산은 큰 흠결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85세까지 살았고, 집안이 부유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 편안함을 대대손손 누리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늘 임금에게 직언했고 그래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20년 가까이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위의 시조는 고산이 30세에 함경도 경원 지방에 유배를 가서 쓴 '견회요' 5수 중 제2수이다. 그는 광해군 때 성균관 유생 신분으로 당시의 집권 세력인 이이첨 일파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갔다. 이때는 광해군이 집권하고 피의 숙청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이첨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만으로도 사형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의 죄상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으니,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시에서 그는 남들이 보기에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자기도 모를 리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한 것은 다 임금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누가 무슨 말(측근들의 아첨하는 말, 모함하는 말)을 하더라도 임금이 직접 헤아려 보고 판단을 해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는 말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그 맛에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권력자들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믿고 싶어 하지만, 역사는 달콤한 말을 하던 이이첨과 같은 이들을 '간신'이라 이르고, 죽음을 무릅쓰고 쓴소리를 하던 고산과 같은 사람들을 '충신'이라고 기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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