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 밖 이일우 씨는…우현서루(友弦書樓)라는 집을 건축하고 내외국에 각종 신학문 서적과 도화를 수만여 종이나 구입하여 쌓아두고…경상 일도 내에 중등학생 이상에 자격되는 자제를 모집하여 그 서루에 머물게 하고 매일 학술로 강연 토론하며 각종 서적을 열람케 하여 문명의 지식을 유도하며…숙식 경비까지 스스로 부담한다 하니 국내에 제일 완고한 영남풍습을 개량 진보케 할 희망이 이 씨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기초가 되리라…."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글 동포신문 '해조신문'은 4월 22일 대구 '우현서루'를 소개했다. 조선 패망 전 우현서루가 '국내 제일 완고한 영남풍습'을 바꾸려 어떤 일을 하는지를 현지 동포에게 알리는 글이다. 우현서루는 1905년 급변하는 국제 정세 등을 깨달은 대구 부자 이동진의 지원으로 장남 이일우가 사재로 지은 무료 도서관 겸 애국계몽 교육관이다. 1만 권 넘는 국내외 서적을 사들여 누구나 와서 보고 유명강사 강연을 듣게 하고 무료 숙식까지 제공했다. 대구와 나라를 위할 진보적인 국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다.
1911년 강제폐쇄 때까지 전국에서 지식을 갈망한 백성이 찾았다. 신지식 보급은 물론 항일 지식인의 사랑방이자 항일 계몽사상 전파처였다. 언론인 장지연, 독립운동가 박은식,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일본에서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 등 주요 인물만도 150여 명이었다. 그는 서루 폐쇄 뒤에도 강의원이란 고급 서당과 학교 운영 등으로 대구 변혁에 나섰다. 그의 활동은 조카인 저항시인 이상화 네 형제와 숱한 대구 출신 문인의 자양분이 됐다.
우현서루와 함께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김광제 사장과 서상돈 부사장이 운영한 출판사 광문사도 한몫했다. '국내 제일 완고한' 영남 특히 대구풍습은 우현서루, 광문사와 다른 여러 기관과 인물로 변했다. 일제 35년간 많은 독립지사와 탁월한 항일 저항 문인 배출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제 시절 대구가 '조선의 모스크바'라 불릴 만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활동이 활발했던 까닭도 완고한 대구풍습 쇄신 활동 결과인지도 모를 일이다. 1945년 광복과 좌우 대결을 거쳐 이승만 정권에서의 진보 성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특히 1956년 3대 대선의 경우, 대구에서 진보당 조봉암 후보는 자유당 이승만 후보보다 3배 가까이 득표했다. 대구 유권자는 1950, 60년대 각 5차례의 대선과 총선에서 여야 후보를 탄력적으로 선택했다. 또한 대구의 진보 기류는 독재정권에 저항한 2'28 학생운동과 힘든 역경의 1970년대에 노동자를 대변해 분신한 전태일 열사, 박정희 정권에 목숨으로 맞선 여정남 등의 민주운동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는 이뤄졌다. 완고한 풍습을 바꾸려고 일찍부터 뿌린 씨앗이 30년 세월을 두고 부침(浮沈)을 거듭한 셈이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이상 현상이다. 지역주의로 30년 가까이 특정당의 대구 독식이다. 단색의 정치 지형도는 공고해져 동맥경화 같다. 활기는 날로 떨어졌다. 대구 산업 활력도를 말하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한 사례다. 1985년 작성 이후 전국 16개 시'도 중 1988년까지 8~11위였고 이후는 더 낮다. 1998년부터는 16위로 꼴찌다. 기업이 떠나거나 적으니 뒤처질 수밖에 없다. 떠나는 젊은이로 인구도 감소세다. 2003년 252만9천여 명 정점에서 줄어 이제 248만6천여 명이다. 멈출 기미도 옅다. 포용과 다양성을 배척하고 '한 색'만 고집한 결과라면 심한 말일까?
류성룡의 '징비록'을 분석한 송복 교수는 조선 500년 생존 이유로 '절대 빈곤'을 들었다. 빈곤은 활력을 잃게 하고 이는 정체로 이어져 오늘날 북한처럼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다면서 "사회가 활력을 잃을수록,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 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고 했다. 단조로운 정치, 활력을 잃은 경제의 대구를 여기 비추면 지나칠까? 또 대구의 이런 모습을 반길 사람은 누굴까? 총선이 다가올수록 결과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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