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세요?

캐나다에는 '비만인권리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이 협회가 주로 하는 일은 44사이즈 이하의 옷만 파는 가게 앞에 모여서 항의를 하고, 북미 여성들의 평균 사이즈가 77사이즈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사실 나도 비만인권리협회에 가입하기에 충분할 만큼 뚱뚱해서 이 협회의 활동을 지지하는 쪽이다. "손님 사이즈는 없어요." 이 말을 듣고 매장을 나올 때마다 나는 뚱뚱한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미국에는 체형인정촉구협회라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얼른 이런 단체가 생겨 옷가게들이 부디 내 체형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체형을 인정받길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살을 빼라 한다. 이는 살을 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통계에 따르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76%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년 뒤에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찌고, 5년 뒤에는 95%나 살이 더 찐다. 즉 다이어트는 거의 실패로 끝난다. 이것은 살을 빼는 것이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뚱뚱한 사람들은 비만이 당뇨병, 암, 심장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몰라서 살을 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을 빼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로 들릴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유전적,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뚱뚱한 사람들은 건강의 위협 외에도 자주 '모욕감'을 느낀다. TV에서는 잘생긴 남자가 뚱뚱한 여자를 조롱한다. SNS에는 뚱보 혐오가 넘쳐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뚱뚱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더 부정적으로 보도록 한다. 살이 찐 자기 자신을 못생겼고, 멍청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뚱뚱하다'는 말은 단지 '살이 찐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뚱뚱한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이 모욕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만인권리협회 회원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물었다.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 당신은 뚱뚱해요"라고 쉽게 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뚱뚱하다'는 말이 '살이 쪘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에 뚱뚱한 사람이 직접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뚱뚱하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미취업, 장애, 성적 소수자, 지방대 등과 같은 말들 역시 그 말이 나타내는 '상태' 외에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너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멍청하거나 게으르지 않고 단지 뚱뚱할 뿐이고, 청년들은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취업을 못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가난, 무학, 장애, 재수, 월세, 작은 차 등이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 사회, 단지 '상태'만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뚱뚱한 나를 긍정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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