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혹한 자연법칙과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다. 자연과 직접 대면하는 대신 자연과 인간 사이에 중개물을 끼워 넣기 시작한 것이다. 빠르게 달리는 쪽으로 진화하는 대신 바퀴와 도로를 만들고, 북극곰처럼 털이 나도록 진화하는 대신 기능성 옷을 개발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눈을, 청진기와 음파 탐지기는 청력을 보완한다. 복잡한 계산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전자계산기와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알파고가 바둑 최강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어진 2국, 3국에서도 이세돌 9단이 패하자 사람들은 묘한 불안을 느꼈다. SF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을 것이다.
알파고는 1천202개 CPU(중앙처리장치)로 무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돌을 놓을 때마다 바둑판을 꽉 채운 마지막까지 연산한다고 한다. 이세돌이 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설령 이번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1승 4패가 아니라 5전 전승을 거뒀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장래에 알파고에게 완패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바둑에서조차 인공지능에 패배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사람은 속도에서 자동차와 비행기에, 정밀도와 힘에 있어서는 컴퓨터와 기계에 패한 지 오래다. 도구는 인간의 맨몸보다 기능적으로 더 우수할 때 비로소 도구로서 가치를 가진다. 그러니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다는 사실에서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일각에서는 인공지능 연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초점에서 빗나간 얘기다.
인간은 육체에 한계가 있기에 결핍과 불만,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추위도 더위도 배고픔도, 불편도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스스로 욕망을 가질 수도 없다. 그것들은 방대한 데이터와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작동할 뿐이다. 그러니 인공지능이 어떤 목적이나 욕망을 갖고 인간을 공격하거나 점령, 지배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미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화폐는 인공지능보다 훨씬 오래전에 인류가 개발한 도구이며, 인간을 거의 완전하게 지배한다. 동서고금에 걸쳐 간헐적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났지만 대부분 지엽적이고 단기적인 저항에 그쳤다. 화폐는 무겁고 많은 짐을 멀리 운반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원래의 역할을 넘어 기존의 모든 관계를 바꿔버렸다.
화폐의 인간 지배가 느슨하던 시절만 해도 우리는 이웃 혹은 자연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화폐가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는 직접 접촉의 기회를 잃어버렸고, 동시에 인간적인 감정까지 잃어버렸다.
예컨대 현대인은 저녁 식탁에 돼지고기를 올리기 위해 돼지를 직접 기르거나 잡을 필요가 없다. 돼지를 기르고 잡는 과정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돈만 지불하면 된다. 저녁 식탁에 돼지고기가 오르기까지 어떤 사람이 수고를 했는지, 어떤 감사를 전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동네 아저씨나 아버지가 돼지를 키우고 잡던 시절이라면 자연스럽게 느꼈을 감정을 접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미안함이나 고마움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는 대신 돈만 벌면 된다. 상황이 그러니 돈을 얻기 위해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을 공격하고, 수십 년 지기와 피를 나눈 가족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개인의 개인 공격뿐만 아니라 집단의 집단 공격도 수없이 발생한다.
사람은 도구를 만듦으로써 맹수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덕분에 인간을 사냥할만한 동물은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더 위태롭게 살아간다. 사람이 만든 도구, 돈의 인간 사냥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돈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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