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거품공주

# 거품공주 -박미경

나는 거품, 거품공주

지느러미 대신 다릴 가지면 한낱 거품으로 사라져버릴 운명을 가진,

거품 공주

-중략-

거품공주, 거플 거플, 그 옷거플 물거품처럼 걸친,

-중략-

깡그리, 흔적도 없이, 온 오대양, 온 우주를, 몇 겁 헤매어도,

완전히 휘발돼 찾을 수 없는,

울 아버지, 울 엄마에게 차마 온 적도 없이, 사라지고픈

나는야, 거품공주, 버블, 버블,

(계간 『문학마당』 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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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제 어미의 물거품에서 태어난다. 어미의 물거품을 받아 마시고 손가락으로 어미의 물거품을 가지고 놀다가 이 세상으로 나왔다. 매일 밤 우리는 꿈속에서 다시 그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꿈속으로 흘러가기 위해선 물거품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거북이 한 마리가 거품을 뱉으며 해안에서 육지로 힘겹게 기어오르듯이, 우리는 모두 이 시처럼 '한낱 거품으로 사라져버릴 운명을 가진 거품공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이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와서 한 일이라곤 뭍으로 올라와 거품을 뱉는 일밖에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거품을 물고 답할 것이다. 나는 울 아버지 울 엄마의 몸속 푸른 거품에서 태어나, 지금 작은 물방울 하나를 세상을 향해 밀며 살아가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거품을 물며 그렇게 답해주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 물어 나르는 그 거품이 가족 같은 것이 되었노라고, 세상에서 물어온 물거품을 나누어 먹으며 살아가는 게 삶이라고, 몸속의 거품을 뱉어내서라도 입을 마르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가지런히 누워 자고 있다고. 없는 게 많을수록 거품이 생겨나는 세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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