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헤일, 시저!

화려한 은막 스타 실상 할리우드 황금기 풍자

30여 년간 영화를 만들어오면서 아카데미와 칸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탄 코엔 형제가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할리우드 황금기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코엔 형제는 블랙코미디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가장 잘 발휘한다. 미국의 영화예술을 이끄는 이들에 대한 배우들의 존경도 상당해서 이번에도 여러 스타들이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감초 같은 열연을 펼친다. 조지 클루니, 조슈 브롤린,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등 연기파 배우들에서부터 스칼렛 요한슨, 채닝 테이텀, 엘든 이렌리치, 조나 힐 등 개성 있는 젊은 스타들, 또한 프란시스 맥도먼드, 크리스토퍼 램버트 등 보고 싶은 얼굴까지, 명망 있는 배우들이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빛낸다.

영화는 이야기 자체로도 포복절도할 만하지만, 1950년대 당시 미국의 정치사회적인 상황과, 곧 위기를 맞게 되는 할리우드 대기업 스튜디오의 전성기 끝자락에 대한 영화사적인 상황을 알면 더더욱 재미가 상승하는 영화다. 은막 위의 화려한 스타들의 아름다움 이면의 실생활이 보여주는 어처구니없음은 실제 할리우드 유명인들을 떠올리게 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또한 빨갱이 사냥으로 알려진 당시 '매카시즘'이 어떻게 할리우드를 파괴했는지,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한 과장된 기대가 어떤 우스운 결말로 향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도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게 느껴지지만, 가볍고 요란한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꿰뚫는 감독 특유의 풍자적 시선이 주류 장르를 뒤틀고 비틀어서 관객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는 가상의 스튜디오인 '캐피틀 영화사'의 총괄 제작자 에디 매닉스(조시 브롤린)의 시선에서 사건의 요모조모로 옮겨 다닌다. 에디는 스튜디오 내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내는 실력자다. 영화사가 공들이는 대규모 영화 '헤일, 시저!'의 촬영이 진행되던 중, 주연배우 베어드 히트록(조지 클루니)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생활 면에서 워낙 방만한 인기 스타라 으레 있곤 하던 잠적이라고 여기지만 스스로를 '미래'라고 칭하는 납치단은 거액을 영화사에 요구한다. 에디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이, 감독 로렌스 로렌츠(랄프 파인즈)는 신인 액션스타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의 발연기에 짜증을 내고, 순수함의 상징인 뮤지컬 영화 인기 여배우 디애나 모란(스칼렛 요한슨)은 계속해서 스캔들을 일으킨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떠받치던 당시 최고 인기 장르인 에픽 대작, 서부극, 싱크로나이즈 뮤지컬, 탭댄스 뮤지컬, 실내극 멜로드라마가 영화 속 영화의 장면으로 등장하여 다채로운 장르의 향연을 펼친다. 관객을 화려한 화면에 홀딱 빠지게 하는 환영주의의 현신인 장면들 바로 다음에 스타와 제작자의 실랑이가 펼쳐진다. 영화는 더 없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상품이 되기 전, 이를 만드는 과정의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드러냄으로써 자본주의 상품 생산과정의 본질과 허상을 풍자한다. TV가 본격적으로 경쟁 매체로 떠오르던 1950년대에 영화계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화려한 볼거리의 향연은 이 영화의 재미 그 자체가 된다.

영화 전체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에디가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제안을 받고 갈등하는 더 큰 플롯으로 구성된다. 에디가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하면서 영화는 히치콕식의 미스터리로 시작하는 듯하지만, 그의 죄는 너무도 사소하여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큰 플롯 구성은 필름 누아르 형식을 따라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영화사 안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는 에디의 공적인 업무를 따라가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은 에디라는 스튜디오 실력자의 개인적인 고민과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카시즘의 광기와 함께 막을 내렸던 거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붕괴를 아직까지 모르는 자의 헌신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21세기를 살아가는 관객은 안다. 낄낄거리게 하는 소소한 유머의 마지막은 냉전시대를 낳은 관념적이고 소모적인 체제 전쟁과, 곧 낡은 것이 될 시대를 읽지 못하는 인물들의 고군분투에 대한 아련한 연민 의식이다. 영화는 대중영화로서의 유희로 가득하면서도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공격 정신이 살아있다. 걸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1959) 이후 최고의 할리우드 풍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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