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배운 조선, 고려 때의 많은 시가(詩歌)가 글자에서 보이는 서정적인 느낌과는 달리 실제로는 권력을 지향하고, 최고 권력자에게 오로지 충성을 맹세하는 용비어천가였음은 다 안다. 송강 정철의 여러 별곡은 말할 것도 없고, 정과정(鄭瓜亭)과 같은 고려시대 가요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들은 어떤 이유로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내쳐졌든 간에 자신의 잘못보다는 억울함을 더 앞세운다. 또, 자신을 내친 사람은 절대 권력이 아니라 그 주변 인물의 참소 때문이며 이 억울함은 온 세상이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내 충성심은 영원하니 절대 권력께서 이를 알고 언젠가는 불러줄 것을 믿는다며 끝맺는다. 내침을 당하면서도 절대 권력에만큼은 직접적인 날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당시야 절대 권력에 날을 세우다가는 사약이 떨어질 판이니 목숨 보전을 위한 선택이라고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선비 풍모보다는 권력지향성이 두드러진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런 경향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에서 드러난 상황을 보면 그렇다. 절대 권력과의 관계가 확실하게 끝났다고 판단한 한두 사람을 제외하면 새누리당 공천에서 내쳐진 대부분 인사는 절대 권력 곁에 멀찌감치라도 붙어 있으려고 여지를 남겼다. 온갖 불만을 억누르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지금은 사랑했던 당을 잠시 떠난다" "이제는 당과 대통령에 바친 모든 열정과 충정을 잠시 가슴 한편에 묻는다" "잠시 당을 떠나는 한이 있어도 주민들의 직접 결정을 받겠다"며 '잠시'(暫時)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당선하면 당연히 복당하겠다는 뜻인 이 '잠시'에는 내 뜻이 아니라 핍박에 의해 떠나는 것이며 이 떠남이라는 피치 못할 상황을 절대 권력께서 몰라주면 안 된다는 비유적인 용비어천가가 숨어 있다.
잠시가 얼마일 지는 총선일인 내달 13일 결판난다. 이들이 얼마나 생환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공천 사태를 보면서 절대 권력과 권력지향이라는 개인적인 성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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