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연재소설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랜 기간 신문연재소설은 발행부수를 급증시킬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신문사 입장에서 보자면 신문연재소설은 경영이익 창출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문사의 정치적 견해를 독자들에게 은밀하게 전달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문학사상 신문연재소설의 기능을 가장 먼저 '자각'한 작가는 누구였을까. 최초의 신소설 '혈의누'(血의淚, 1906)의 작가 이인직을 거론할 수 있다. 이인직은 '피눈물'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붙인 소설 혈의누를 자신이 주필로 있던 신문 '만세보'에 연재하였다. 이 소설이 신문사 경영이익 창출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신문사의 친일성향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어린 소녀 옥련의 성공담을 다룬 이 소설에서 옥련은 일본인의 도움으로 성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청일전쟁 와중에 부모와 헤어졌고 상처까지 입은 어린 소녀 옥련을 구해준 것은 이노우에라는 이름의 일본인 군의관이다. 그는 옥련의 상처를 치료해줄 뿐 아니라 오갈 데 없는 옥련을 일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보내 교육까지 받게 해준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일본인이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명인으로 그려지고 있고, 일본과 만주를 합한 '문명강국 일본'의 건설 역시 힘차게 주창되고 있다. 독자들이 혈의누를 읽으면서 일본에 대해, 그리고 일본 주도의 문명강국 건설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혈의누의 이런 친일적 성향에는 만세보의 정치적 입장뿐 아니라, 일본을 향한 이인직 개인의 한없는 긍정과 애정이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인직은 만세보를 비롯해 '국민신보'와 '대한신문' 등의 신문을 이끌면서 친일의식을 전파했는가 하면, 한일병합조약 때에는 이완용의 비서로서 병합체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친일파'였던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이인직의 친일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혈의누 역시 '친일소설'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연계교재인 'EBS 수능특강' 문학 교재에 혈의누가 우리나라의 첫 현대소설로 소개된 것은 물론 본문까지 실린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혈의누가 일본을 미화하고 일본의 아시아 패권주의를 설파한 친일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의누에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측면도 있다. 근대적 교육을 받고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활기차게 나아가는 여주인공 옥련을 비롯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이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인물상이었다. 특히, 옥련과 구완서 두 남녀의 평등한 관계는 당시 조선에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혈의누에는 이처럼 긍정적인 면모와 더불어 친일을 향해 나아가던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왜곡된 의식이 함께 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모여 혈의누를 만들고 있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혈의누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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