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홍어라면'과 '대게라면'

필자는 음식 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많이 먹고 자주 먹고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어릴 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잘 먹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먹는 즐거움은 필자에게 뺏을 수 없는 행복이다.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종종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기도 한다.

최근에 필자가 먹은 음식 중 기억에 남은 음식 두 가지는 바로 홍어를 넣어 끓인 라면과 대게를 넣어 끓인 라면이었다. 홍어와 대게 두 음식은 모두 필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워낙 강한 음식이라 음식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두 라면의 여운을 통해 인생살이의 몇 가지 교훈을 받았다.

홍어라면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홍어를 넣어 끓인 라면은 홍어의 강렬한 맛을 더욱 자극적이게 만들어서 면까지도 완전히 홍어화를 해버리는 힘이 있었다. 너무 자극적이라서 라면 본연의 맛은 하나도 느낄 수 없고 온통 홍어에 지배받은 강렬함이었다. 좋아하는 필자조차도 먹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대게를 넣어 끓인 라면은 대게의 고유한 맛이 은은하게 배어 나와 고민하면 찾아낼 수 있으나 거의 대게의 존재를 맛으로 가려낼 수 없었다. 전체적인 라면의 맛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시원하고 달콤하면서도 라면 고유의 맛이 더욱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속에서 '홍어라면' 같은 부류들이 있다. 자신들의 매력과 장점을 앞세워 '마니아'층만을 생각하고, 전체가 어찌 되었든지 어떻게 생각하든지 자신의 색깔과 주장만을 드러내는 부류들이다. 라면은 라면이다. 그럼에도 라면이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힘이다. 전체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수준 높은 것은 아니다. 독특함을 넘어 이상할 뿐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와 정치가 어쩌면 '홍어라면'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반면 '대게라면'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도 참 고귀하고 아름답지만 남을 위하여 전체를 위하여 자신의 주장이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게가 라면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수준 높은 맛을 낸다. 때로는 자신과 뜻이 맞지 않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품어 주고 자신을 낮추면 오히려 전체는 아름다운 맛을 낸다. 더욱 대게의 진가는 발휘된다는 사실이다. 대게라면은 남녀노소가 공감하는 보편성과 공감의 맛이 있다. 그것이 진짜 맛이다.

강함으로써 자신의 맛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다 그 맛을 잃어 버리게 한다. 최근의 한국 사회를 보며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고 그 상황을 이해하는 배려나 전체를 생각하는 맛을 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김용택 시인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진정한 배려가 그리운 세상이다. 자신의 자존심과 매력을 전체의 정의를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진짜 참맛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더욱더 나 자신을 죽이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전체를 생각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존 맥스웰은 그의 책에서 "배려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도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품어서 함께 맛을 내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정말 멋진 맛을 내는 수준 높은 것이 나올 것이다.

'대게라면'과 같이 남녀노소가 좋아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강함과 주장을 내려놓고 전체를 맛깔나게 하고 모두를 시원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 현실로 실현되는 그런 사회가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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