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명품 클래식 놓치고 있는 현실

지난해 10월,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 초청 피아노 시리즈 중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의 독주회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스크라빈의 에튀드 전곡과 소나타 5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 러시아 피아노곡들로 구성된 독주회로서, 옵치니코프는 50대 후반의 연주자라고 믿기 어려운 기량과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주었다. 특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이미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음반과 연주로 우리 귀에 익숙한 곡이지만, 그는 모음곡마다 기존의 정형화된 해석을 뒤집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로 관객들에게 놀랍고 즐거운 순간들을 선사했다.

바로 이것이 라이브 연주의 묘미다. 그날의 홀 분위기, 관객과의 교감, 연주자의 컨디션 등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예상치 못한 감동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날, 연주가 끝난 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크게 실망했다. 그 많던 클래식 애호가들과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 있었다. 이렇게 멋진 순간에 함께할 관객이 없다는 건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말 슬픈 일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프루스트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술관이란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림과의 적당한 거리와, 그림을 둘러싼 환경이 그 그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안에 걸려 있거나 컴퓨터 화면으로 본 그림을 미술관에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너무나 접하기 쉬운 환경에 살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 수입되는 해외 거장들의 음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는 한국에 찾아올 때를 기다려 비싼 티켓비를 내고 연주회를 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켜면 30초 안에 유튜브에 접속할 수 있고, 수많은 연주 동영상 중에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이는 편리하지만 큰 문제점이 있다. 간혹 유튜브에서 오류가 많거나 수준이 낮은 연주자의 동영상을 보고 배워오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런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해외 거장 연주자들이 한국을 찾아온다. 공연장까지 가는 시간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왜 그들의 연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는 건가." 권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 수성아트피아의 국제콩쿠르 우승자 피아노 시리즈는 독특하다. 국제콩쿠르 우승자 피아노 시리즈 같은 기획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첫째, 협연이 아닌 독주회라서 연주자의 풍부한 개성이나 악기 고유의 매력을 좀 더 깊이 느껴볼 수 있고, 둘째, 갓 우승하여 연주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연주자들이 아닌, 연륜 있는 중견 연주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공연은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큰 스케일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대구에 온 후 약 1년간 느낀 점은, 관객들은 음악가보다는 '스타 연주자'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젊은 '스타 연주자'만을 중심으로 기획된 공연이 대부분이다. 물론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스타 연주자'로 보장되는 상업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겠지만, 연주자에게서 '스타성'보다는 '음악성'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도 있는 법이다. 이런 지점에서 이번에 수성아트피아의 콩쿠르 우승자 공연은 권할 만하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클래식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진정한 음악성은 연주가 진행되는 그 순간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연주가 진행되는 그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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