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쯤 전인 2012년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 날이었다. 다음 날 마감할 칼럼 주제를 두고 고민하다 총선 결과와 관련한 글을 쓰기로 했다. 당시 본지는 석간이어서 결과를 다 보고 아침에 마감하면 됐지만, 바쁜 아침 시간에 일필휘지로 쓸 문재(文才)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새로 쓸 각오로 총선 결과를 단정해 얼개를 만들었다.
그때 예상은 27대 0이었다. 대구 12석과 경북 15석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차지할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시 총선의 전국적인 이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에 대한 심판 여부였지만 대구경북은 예외였다.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 바람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잠잠했다. 수성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가 선전했으나 당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특히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현 대통령인 점이 27대 0으로 예상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상은 현실이 됐고, '한 명만이라도'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춘몽(春夢)이었다.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에서 딴 '임 향한 일편단심'이라고 제목을 붙인 글의 끝에 이렇게 썼다. "이번 결과를 계기로 지역의 유권자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유권자의 덕목이 아니다.…말뚝을 꽂아 놓고, 절만 하라는 오만 앞에서 향주일편단심 영유개리여지(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與之,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만 외치고 있으니 이런 어리석은 사랑도 다시 없는 듯하다.…짝사랑은 영원히 짝사랑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때다."
다시 4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처음보다 차이가 조금 줄었으나 최근 여론조사까지 9%포인트 이상 앞섰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무소속 후보는 도긴개긴이어서다. 처음부터 공천을 신청하지 않은 자발적 무소속 후보는 당선과 거리가 멀다. 반면, 새누리당 후보와 견줄만 한 몇몇 무소속 후보는 당선한다 하더라도 '당의 손짓' 한 번만으로 의기양양하게 복당할 것이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당헌당규상 탈당한 사람의 복당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선거 전에 한 번 해보는 소리라는 것을 다 안다. 결국, 새누리당에 실망해 무소속을 찍어봐야 온통 새누리당 일색만은 아니라는 통계상 착시일 뿐 결과는 오십보백보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대구경북은 특정 정당 독식으로 나타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정 정당이 공천에서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유권자를 업신여기고 봉으로 취급해도 결과는 같아 그 비판은 더욱 뼈아팠다. 그러나 이는 대구경북 유권자의 잘못이 아니다. 당이 제멋대로여도 도무지 심판할 방법이 없었다. 제대로 된 야당 후보가 없고, 무소속을 선택하면 당선하기 무섭게 복당해버리니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겠는가?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대구경북 27석은 한나라당 17석, 친박연대 4석, 무소속 6석의 분포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아닌 10명 가운데 당에서 제명당하고서도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무소속 한 명을 제외한 9명이 금배지를 달기가 무섭게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다.
올 선거는 선거구 획정에 따라 경북에서 2석이 줄어 대구경북의 의석 수는 모두 25석이다. 새누리당이 대구 동을에 후보를 내지 않아 통계상 25대 0은 나오지 않는다. 0이 최소한 1로는 바뀌지만, 더 큰 숫자로 늘어날 것인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숫자가 더민주에서 탈당한 홍의락 후보를 제외한 다른 무소속 당선자로 채워진다면 25대 0과 같고, 특정 정당 독식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대구경북 유권자는 슬프다. 새누리당의 독선을 심판할 방법이 없는데도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무기력하다. 그렇다고 기권이나 무효표를 선택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어서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경쟁력 있는 야당 후보가 출마한 지역구 유권자가 부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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