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모멸감 테러

자신의 존재 가치가 격하되거나 누군가로부터 부정당할 때 느끼는 감정을 모멸감이라고 한다. 인간이 모멸감을 느낄 때,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타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모멸감을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세대 간 갈등의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파탄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서로 모멸감을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립되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파탄의 인간관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가능성을 인간은 늘 갖고 살게 된다. 그물처럼 촘촘한 관계망 속에 사는 인간은 타인과 우호적인 유대 관계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수월해진 디지털 통신 시대에 모멸감은 기호화돼 더욱 쉽게 서로에게 전달된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문자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을 때, 상대방은 무시당한다는 감정을 쉽게 갖게 된다. 의도치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럴 경우 상대방의 존재가치를 가장 쉽게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떤 상대방은 이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연달아 이어지면, 상대방의 마음속에는 나쁜 감정이 쌓여 결국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현대인이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은 꽤 다양해졌다. 우리 생활 곳곳에 함정처럼 깔려 있고, 모멸감을 주는 행동은 습관화된다. 계급이 높은 사람이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에게, 즉 사회'정치'경제'문화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열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이 원인은 아닐까. 예컨대 직장 상사는 부하에게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한다. 비싼 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옆 동네 서민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깔보고 놀린다.

이런 모멸감은 한순간 느끼고 말게 될 감정이 아니다. 사회'정치'경제'문화적으로 우월한 위치가 한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면, 모멸감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도도 함께 대물림되는 것이다. 최근 터져 나온 금수저'흙수저 구도 역시 따져보면, 열등한 위치에 있는 흙수저를 향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금수저가 '모멸감 테러'를 가하는 구도인 셈이다.

살기 좋고 행복한 인간관계망 구축이 절실하다. 모멸감을 주는 행위가 난무하지 않고 대신 자존감이 사회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멸감을 주고 또 느끼는 것을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병리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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