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박나무<2>-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아이들 뒤를 따라다니던 인솔교사가 얼른 나서 거들어주었다. 멋쩍어진 나는 아이를 향해 '봉숭아학당'의 영구처럼 헤벌쭉 웃어주었다. 또 다른 아이는 내 이마와 얼굴에 굵게 파인 주름살을 손가락으로 꼭꼭 찌르면서,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요?" 하는 것이었다. 졸지에 내가 기념관 해설사가 아니라 유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거실에 있는 큰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까맣던 머리는 된서리를 얼마나 맞았는지 허옇게 바랬고, 이마의 주름은 밭고랑처럼 언틀먼틀 깊고 굵게 파였다. 윤곽도 희미해진 눈썹에는 흰 터럭이 성깃성깃 돋아 있고, 안경 너머 두 눈은 밤샘 문상이라도 하고 온 듯 퀭하다. 길고 깊이 파인 팔자 주름과 굵은 실로 꿰맨 듯 꾹 다문 입술은 몽니가 잔뜩 난 고집불통처럼 보였다.

한동안 허우룩한 눈길을 거울에서 거두지 못하고 서 있던 나는 서름하게 돌아섰다. 그러자 뭔가 알 수 없는 서러움 같은 게 울컥 치밀어 올랐다. 서러움은 우울함으로 번져갔다. 노년에 찾아드는 우울증은 어떤 질병보다 무섭다. 어떻게든 나를 달래야 했다.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로해줄 것인가.

무릇,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것은 사물의 겉모습에 불과하다. 참모습이 아니다. 참모습을 보려면 심안(心眼)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자책이 아닌 자애(自愛)의 눈길로 다시 거울 앞에 섰다.

흰머리는, 삶의 긴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달려온 마라토너만이 쓸 수 있는 왕관이다. 이마의 굵고 거친 내 천(川) 자 주름은, 삶의 전장을 누비고 다녔던 탱크의 캐터필러 자국이요, 삼성(三星) 장군의 계급장이다. 흰 눈썹은, 마량(馬良)의 백미요, 출중함이다.

움푹 들어가고 퀭한 두 눈은, 사려와 분별, 삶의 지혜가 그득 고인 웅숭깊은 혜안이다. 입가의 팔자 주름은, 지난한 삶을 경영해온 CEO의 관록이다.

꽉 다문 입술의 한 일 자는, 생(生)과 멸(滅)이 하나로 꿰어 있어 둘이 아니라는, 일이관지(一以貫之)다.

내 얼굴은 먹색 하나로 그릴 수 있는 묵화가 아니라, 수십 가지 색을 짜내 짓뭉개고, 셀 수 없이 덧칠하고 덧칠해 그린 유화다. 단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시가 아니라, 주저리주저리 사연이 많은 산문인 것이다.

비로소 나는 위안을 얻었다. '머리를 염색하느냐 마느냐' 하는 햄릿의 고민도 끝났다. 자랑스러운 왕관을 왜 검게 물들여 망가뜨릴 것인가.

이제는 혼혈아라는 비칭은 사라진 지 오래고, '다문화 가족'이라고 부른다. 펄벅기념관에서도 다문화 가족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오감으로 떠나는 펄벅 여행'이라는 체험학습을 시행하는데 장애아동들이 그 대상이다.

펄벅 여사에게도 장애아가 있었다. 딸, 캐럴은 정신연령이 서너 살에서 멈춘 정신 박약아였다. 여사는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편견을 깨고자 장애 아이를 낳아 기른 어머니의 체험으로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 훗날 '가장 힘들게 쓴 소설'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녀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슬픔이 있다.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래지지 않는 슬픔이다. 달랠 수 있는 슬픔은 살면서 마음속에 묻을 수 있는 슬픔이지만, 달랠 수 없는 슬픔은 삶을 바꾸어 놓으며, 그 자체가 삶이 되기도 한다. 사라지는 슬픔은 달랠 수 있지만, 안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은 영원히 달래지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펄벅 여사가 소사희망원을 건립한 것은 그녀 나이 75세 때였다. 소사희망원 개원식 때 "오늘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한 그녀는, 인터뷰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40년 전 아니 10년 전보다 더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일흔 이후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했다." 또 "노년은 남은 생애, 여생이 아니다.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다. 늙음이 가져다주는 지혜는 오래 묵힌 포도주처럼 깊고도 그윽하다. 저물어간다는 것은 깜깜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일이다"라고 했다.

전시장 입구 공원 언덕에, 제법 키가 큰 후박나무가 기념관 지붕을 이윽히 내려다보고 서 있다. 잎이 무성한 가지를 널찍하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 알을 품고 있는 어미 닭의 넉넉한 품새다. 후박나무는 수종이 다양해 다 자라면 키가 20m가 넘고, 둘레는 1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 후박나무에는 잎자루에 다섯 개 혹은 일곱 개의 두툼한 잎사귀가 달려 있는데, 마치 사람 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릴 적 아픈 배를 밤새 문지르면서 '내 손은 약손'이라고 하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 같다.

녹색의 윤채 나는 색상은, 피로한 눈과 마음을 금세 싱그럽게 해주고, 타원형의 넓적하고 긴 잎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오지랖 넓게 사방으로 죽죽 뻗은 가지에는, 낮에는 새들이 내려앉아 쉬어가고 밤이면 돌아와 편안하게 깃을 튼다.

5, 6월에 피는 연노랑 꽃은 연꽃처럼 청아하고 소담스러우며, 은은한 향기는 멀리까지 퍼져 나가고, 9, 10월에 맺는 빨간 열매는 물론, 줄기와 뿌리의 껍질(후박피)까지 한약재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원목은 가구나 선박재로 널리 쓰인다.

후박나무는 온몸을 아낌없이 내준다. 이와 같이, 후박(厚朴)나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후박나무는, 펄벅 여사의 후덕(厚德)한 인품과-꾸밈없이 검소하고 진솔한 삶을 산-질박(質朴)한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펄벅 여사의 헌신, 희생, 박애 정신을 계승하려는 듯 공원 곳곳에서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후박나무를 보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의 혼과 기를 받아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자애로운 성품을 본받아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펄벅기념관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는 '펄벅평전'이 되어 자상하고 해박하며, 전기수(조선 말기 직업적으로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어 주던 사람)처럼 입담 좋은 문화해설사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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