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원책의 새論새評] 돌려줄 존영이 없다

전원책 칼럼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박 대통령 존영 돌려달라" 한심한 진박

거부한 '비박' 무소속 후보도 마찬가지

'조폭스러운' 정당은 보스와 함께 소멸

국회의원 수준 보면 우리 미래 암담해

요즘 선거는 옛날과 너무 많이 달라졌다. 그중 하나가 길거리 풍경이다. 목 좋은 곳 빌딩에 선량(選良) 후보자가 입을 벌린 채 웃는 모습의 초대형 현수막이 내걸린다. 대개 그런 사진은 자신의 보스와 함께 찍은 것이다. 각 당의 공천자가 결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거리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요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같은 야당의 거물급 얼굴들이 넘쳐났다.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보스와 나는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고 외치는 것일까? 보스를 팔아 표를 얻겠다는 걸 굳이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그게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인데 누굴 탓하겠는가? 하긴 근엄하게 무게 잡고 찍은 사진이 그 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어쨌든 '보스팔이'는 먹혀든다. 왜 보스냐고? 계파의 영수라거나 지도자라거나 하다못해 명망가라는 말도 있는데 왜 하필 조폭처럼 '두목'이라고 부르느냐고 타박하지 말라. 우리 정당 중에서 '조폭스럽지' 않은 정당이 있기나 한 것인가? 공당(公黨)에서 '보스를 배신했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그 배신자를 쳐내는 걸 당연히 여겼다.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도 공천 문제로 난장판이 됐다. 이런 사천(私薦)을 두고 공천(公薦)이라고 우기는 게 너무 희극적이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조폭이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뿐, 배신자의 명줄을 끊는 건 똑같다.

그러니 말이 정당이지 전부 도생(圖生)의 정치여서 이합집산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백 년 간다던 열린우리당이 4년 만에 '죽은' 게 엊그제인데 '60년 전통의 야당'이니 하는 말은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야당은 과거 민주당이나 신민당과 이름도, 이념도, 색깔도, 정책도, 정치를 하는 방식까지도 다 다르다. 그건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에서 색깔도, 정책도 다 바뀌었다. 심지어 '보수'라는 이념을 공깃돌처럼 뺐다 넣었다 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옛날의 당과 적어도 뿌리가 같다고 하려면 어디 한 군데라도 같은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쉽게 말해 우리 정당들은 보스와 함께 소멸하는 운명인 것이다.

정당이 이처럼 보스 중심인데다 의원이 조폭의 행동대원 같으니 보스는 신성불가침의 신분이다. 그래서 또 사달이 났다. 배신자로 몰려 탈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비박' 무소속 후보들 방에 걸려 있는 대통령 사진 반환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거기 쓴 문장이 기가 막힌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대통령 존영(尊影)을 돌려달라'는 괴이하기가 짝이 없는 문구다. 말하자면, '대통령 사진'이라고 하면 대단한 불경(不敬)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당과 정부에 가득하니 대통령 말씀을 받아쓰기 바빴던 모양이다. 아첨과 굴종이 몸에 배어 있으니 대통령에게 직언과 고언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요, 십상시(十常侍)가 설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대통령 사진과 액자는 '법률적으로는' 당의 재산일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돌려달라는 건 좀 졸렬해 보이지만, 탈당했으니 '남의 당' 재산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공문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복당할 텐데 왜 돌려주느냐'는 거다. 심지어 '떼어가는 걸 막지는 않겠지만 다시 구해서 걸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박 대통령이 여전히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반대편 진박 후보는 한 술 더 떴다.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간 사람들이 존영을 보물처럼 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파문이 일자 중앙선대위가 '더 이상 논란이 되면 안 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선을 그었다.

'존영'을 달라는 쪽도 돌려주지 않겠다는 쪽도 한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저 혀를 한 번 차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앞으로 4년간 국정을 담당할 국회의원의 수준이 기껏 이 정도라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 암담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공부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면 이러겠다. '사진은 고이 돌려보내겠는데, 돌려줄 존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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