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김소연(1967~)

살구나무 아래 농익은 살구가 떨어져 뒹굴듯이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너무 많은 질문들이

도착해 있다

다른 꽃이 피었던 자리에서 피는 꽃

다른 사람이 죽었던 자리에서 사는 한가족

몇 사람을 견디려고 몇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나누어 가진 적이 있다

같은 슬픔을 자주 그리워한다

중략

늙은 아기가 햇볕에 나와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바다가 질문들을 한없이 밀어내고 있다

중략

(부분.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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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부터 방향이 정해지고 바뀌곤 한다. 어떤 질문을 삶에 던져보았느냐가 그 사람의 방향이 되는 것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존중되는 삶이 우리에게 조금 더 필요하듯이, 이 시는 느리지만 우리 안의 깊은 곳의 언어까지 닿는 질문을 하고 있다. 같은 삶을 나누어 가졌지만 우리에겐 조금 더 삶이 필요하다. 조금 더 '내가 당신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는 고백이 필요하다. 어떤 시는 읽고 나면 내 속의 매연 앞에서 더 캄캄해지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몇 사람을 견디려고 몇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는 이 쓸쓸하고 아름다운 질문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환멸과 경이로운 순간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여준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르게 볼 수 있는 질문이 당신에게 존재한다면 삶은 더 이상 치욕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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