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대배우'

'천만 요정' 오달수 첫 주연 맡아, 지친 중년·청춘에 공감 스토리

'괴물'(2006)에서 '도둑들'(2012)과 '국제시장'(2014)을 거쳐 '베테랑'(2015)까지, 1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에 거듭 출연한 것을 비롯해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기록하며 '천만 요정'이라고 불리는 배우가 있다. 한국영화 흥행의 보증수표가 된 배우 '오달수'다. 그가 감초 조연이 아닌 주연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 20년째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만 하던 장성필이 새로운 꿈을 좇아 영화계에 도전하며 겪는 이야기를 담은 휴먼 공감 코미디이다. '대배우'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박찬욱 사단 석민우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오달수의 첫 주연작이라는 점이 영화의 기대 포인트다.

20년째 대학로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 영화배우에 도전하는 성필 역할은 오달수의 실제 경험과 흡사하여 진정성이 느껴진다. 오달수는 실제로 1990년 연극 무대에 데뷔했으며, 2002년 '해적, 디스코 왕 되다'로 스크린으로 진출한 후,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치며 예의 그만의 독특한 페이소스가 넘치는 코미디 연기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한 수많은 중년과 청춘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의 개 파트라슈 역할 전문으로 20년째 대학로를 지키고 있는 성필은 극단 생활을 함께했던 설강식(윤제문)이 국민배우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언젠가 자신도 대배우가 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사 한마디 없는 개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이제는 가족들마저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 대표 감독 깐느박(이경영)은 새 영화 '악마의 피'의 사제 역할로 새 얼굴을 찾고 있다. 성필에게는 자신의 연기를 만인 앞에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는 일생일대의 메소드 연기를 준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한다.

영화는 한국 영화계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조연 군단의 절대 강자들인 오달수, 이경영, 윤제문의 삼각 편대가 눈길을 끄는데다, 충무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 제작 관련 뒷이야기를 담고 있어 더욱 흥미를 자극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박찬욱 감독 밑에서 연출 수업을 받은 신예 감독이 충무로 영화계에 대해 어떤 시선을 보여줄지, 영화계의 실제 인물들을 패러디해 어떤 재미난 유머를 쏟아낼지 잔뜩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또한 오랫동안 조연 활동을 경험한 오달수가 한국 영화계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의 연기관은 무엇인지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에 담길 것으로 보였다. 자기성찰적인 코미디이자 오달수의 '본격적인 영화'에 대한 영화를 예상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배우 오달수를 통해 영화계 현실에 대해 풍자하는 대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극 중 한 가부장의 고군분투, 그리고 좌절 끝에 얻게 될 가족의 소중함과 부성애의 애틋함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블랙 코미디로 현실의 어려움과 맞서기보다는 과잉된 신파적 감수성으로 관객에게 호소한다.

연극과 영화 무대 뒷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에피소드화하는 데에서 몇몇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방향성을 상실하며 진부한 전개를 보여준다. 생활인으로서의 무명배우가 화려한 스타 감독, 스타 배우들과 점점 더 처지가 벌어지며 양극화를 몸소 체험하는 장면은 특수한 직업 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렇기에 매우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으나, 영화가 선택한 웃음과 눈물의 감성적 신파 코드는 공감 스토리를 오히려 억지스럽게 보이게 한다.

영화는 오디션 현장을 누비며 희망을 놓지 않는 수많은 무명 배우들,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과 가족의 안녕을 위한 필수 요소인 직업적인 안정을 향해 나아가는 수많은 서민들을 위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큰 위안이 될 것 같지 않다. 오달수의 실험 역시 도전 그 자체에 그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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