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정선거의 추억

"지금은 자유당 때도 아닌데…"

관권'부정선거 말이 나오면 자유당 시절을 먼저 떠올린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둔 요즘, 관권'부정선거는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자유당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5공화국 시절에는 정보기관이 총선을 은밀하게 지휘했다. 특정 지역을 담당하는 '조정관'이라는 이름의 기관원이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조정관들은 여관'호텔 등으로 여당 후보를 불러내 청와대에서 내려온 자금을 건네주고 애로 사항을 해결해줬다.

경쟁력 있는 야당 후보의 비리 내용을 흘리거나 야당 후보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였다. 야당 후보를 후원하는 기업가는 세무서장과 함께 만나 넌지시 운만 띄워도 자금 지원을 끊었다고 한다. 행정기관과 경찰 등에서도 청사 골방에 '선거대책반'을 설치해 선거 판세를 분석하고 대책까지 세웠으니 관권선거가 얼마나 노골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6공 때에는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선거 자금의 전달과 집행권이 정보기관에서 여당으로 넘어갔다. 한 조정관이 선거 자금이 든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나 자금 집행권을 여당에 빼앗겼다는 전설 같은 뒷얘기가 전해진다. 실제로는 민주화 요구가 들끓던 시기였기에 정보기관을 선거에 적극 개입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의 관권선거가 사라진 것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이후다. 그렇지만 당이나 후보 개인이 자행하는 부정선거는 여전했다. 지역별로 '40당(當) 30락(落)'(40억원 쓰면 당선, 30억원 쓰면 낙선) '60당 50락'이란 말이 횡행할 정도였다. 선거운동원 중에 유권자에게 나눠줄 돈을 중간에 떼먹는 방법으로 돈벼락을 맞은 이도 꽤 있었다. 선거 때마다 수천억원이 풀렸으니 실업자 구제, 사회분배 차원에서는 일정 부분 기여했는지도 모르겠다.

2002년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차떼기사건' 이후 정당 차원의 부정선거는 사라졌다. 그러나 후보 개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부 농촌'경합지역에서는 돈을 쓰지 않으면 선거운동이 어렵다고 한다. 활동비 지급이나 밥 대접이 관행으로 통한다. 한 관계자는 "운동원들이 유권자 몇 명씩 모아 밥 한 그릇을 사면 수천만원이 날아간다"고 했다. 과거의 망령이 아직도 배회하고 있음을 본다. 부정선거가 아득한 추억으로만 기억할 날은 그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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