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새누리당, 대선이 걱정된다

2005년 10월 대구 동을 보궐선거부터 대구경북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선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기자 생활 절반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정치부에서 보낸 덕분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 공천 과정도 비교적 가까이서 관찰했다. 공천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공천 국면에서 공정한 심사를 믿는 사람을 보면 내심 '정치를 잘 모르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적당히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으로 하는 공천을 나름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새누리당 공천을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껏 지켜봤던 공천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시곗바늘을 2012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경제민주화 특허를 가진 김종인 씨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중도층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 결과 박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하고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 있는 청와대를 '접수'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다. 결국 대선은 중도층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의 싸움이었다.

야권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명확해진다. 지난 대선에서 패한 뒤 친노 패권에 멍들어가던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씨를 영입하면서 중도 정당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운동권 출신보다는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한 배경도 중도층을 잡기 위해서다. 안철수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뛰쳐나와 새집을 차린 것도 결국 한쪽으로 치우친 친노 패권 정당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선 국면으로 가면 야당은 후보 단일화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새누리당과 안 대표의 연대를 논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성도 없고 맞지도 않는 조합이다. 중도층에 가까워지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아예 중도층을 깔고 앉아 새집을 지은 안 대표가 대선 국면에서 손을 잡으면 중도층은 모두 야권의 지지층으로 변하게 된다.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가자. 새누리당은 이번 공천에서 중도층으로 지지층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인재들을 상당수 제거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승민 의원과 이재오 의원, 임태희 전 의원 등이다. 원내대표 연설에서 따뜻한 보수를 주장하다가 '파문'된 유 의원은 중도층 선점 측면에서 야권에서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다. 운동권 출신의 이 의원은 야당세가 득세한 서울 서북부의 험지에서 5선을 한 '독종'이다. 임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으로 이론과 현실의 균형감을 갖춘 정치인이다.

새누리당은 이들이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쳤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 꼴이다. 원래 정체성 논쟁은 야당의 전유물이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내에서 난닝구(실용파) 대 백바지(개혁파) 논쟁이 대표적이다.

의석수가 줄더라도 뜻(정체성)이 맞지 않는 이들은 공천하지 않겠다는 발상도 놀랍다. 민주정당이 선거에 임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공천하지 않고 낙선이 뻔한 후보에게 공천장을 주는 생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민주주의는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어쨌든 공천 결과 새누리당의 외연은 줄어들었고, 중도층은 새누리당에서 한 발 멀어졌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다음 대선을 이길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총선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순으로 의석수를 가져갈 게 뻔하다.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야당 분열로 얻는 이득이 더 클 것 같다. 하지만 총선은 전초전이고 본선은 대선이다. 중도층을 끌어안은 야당이 합칠 경우 새누리당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전초전 승리에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 동안 본선 경쟁력이 약화될 공산이 크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이 아쉬운 이유고 대선이 걱정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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