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펄펄 살아 뛰는 '자연'이라는 진짜 책 좀 읽자

경허 선사
경허 선사

우연히 읊음[偶吟]

경허(鏡虛)

글 배우는 아이가 내게 와서 하는 말이

"오늘은 산 위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약이 되는 풀들을 캐보기도 하고

까치둥지 위에도 올라가 보렵니다.

솔바람 소리 쏴아~ 쏴아~ 불어오고

수풀 속엔 새들이 노래하고 있겠지요."

"풍경이 진실로 이리 너를 부른다면

좋을시고, 한바탕 놀다가 오려무나."

書童來我告(서동래아고) 今日願登山(금일원등산)

藥草堪搜取(약초감수취) 鵲巢可引攀(작소가인반)

松琴風瑟瑟(송금풍슬슬) 林鳥語관관(임조어관관) *관:口+官

風景眞如許(풍경진여허) 奇哉一賞還(기재일상환)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제자 중 공명선(公明宣)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가 증자에게 배우고 있을 때 3년 동안이나 책을 읽지 않았다. 까닭을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대략 이랬다. "제가 어찌 감히 책을 읽지 않겠습니까? 저는 선생님께서 살아가는 모습을 부지런히 읽는다고 읽어왔으나, 아직도 다 읽지 못해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스승의 모습 그 자체가 아주 자세하게 읽어야 할 최우선 필독서였기 때문에, 바로 그 귀중한 책을 3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책이란 게 무언가? 책 밖 세상의 압축파일이다. 압축파일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데는 책보다 나은 게 아무것도 없다. 그 책을 열심히 읽지 않는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오로지 책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책 밖의 세상에 대해 눈을 딱 감는다면, 그것은 더욱더 심각한 문제다. 서울로 가는데 지도를 참고할 필요는 있지만, 실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지도에서 나와 현실 속의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책 밖의 세계가 바로 펄펄 살아 뛰는 '진짜 책'이기 때문에, 케케묵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달달 외우는 것이 이상적인 독서일 수도 없다. 조선 후기의 걸출한 선사 경허(1849~1912)의 이 시에 등장하는 훈장은 이 점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느 날 '자연'이라는 진짜 책을 좀 읽겠다고 하자, 두말할 것 없이 휴강을 한다. 제자가 진짜 책을 읽겠다는데 스승이 무슨 수로 그걸 말리랴. 휴강이 아니라 종강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이란 책을 너무 안 읽어서 정말 큰일이다. 그것을 아이들 탓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공부가 책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잘못에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가/ 영재교육 그림책을 펴놓고/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이건 민들레!" "이건 개나리!"// 의자 바로 밑에는, 민들레가 피어 있는데,/ 저기 담장 옆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는데,//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아카시아껌 냄새가 난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되었던가?' 서홍관 시인의 '민들레와 개나리'라는 시다. 이와 같은 작품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그것 자체가 아주 커다란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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