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유아독식(唯我獨食)

어떤 일을 맡은 사람은 대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맡았는지를 가장 먼저 설명한다. 또, 자신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조직을 위해 한 몸 희생하겠다며 어쩔 수 없이 짐을 떠맡은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마치 '내가 불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리'라는 부처의 결연한 심정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유일수록 주변에서는 '당신만 아니면 된다'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많다. 이는 자신의 깜냥은 눈에 안 보이고, 자리만 보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자 여야 3당은 민생 법안을 최우선 처리하겠다고 합의했다. 정치권이 드디어 국민 무서운 줄 아는구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터이지만, 돌아서자마자 썩은 이빨을 내밀며 자리다툼에 골몰이다. 하기야 '제 버릇 X 못 준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보이스피싱보다 더 감미로운 거짓말에 주야장천 속고도 또 기대한 국민 잘못이다.

이번에는 한 술 더 뜬다. 당연히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뽑아야 할 당 대표와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추대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읽혀서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속뜻이 무엇인지 다 아는 말을 빙빙 돌린다. '너 안 돼' '내가 해야겠어'라는 간단한 말을 당 대표 합의 추대가 당헌'당규상 되니 안 되니, 낭떠러지 앞에 선 당을 구해 놓았더니 이제 와 딴소리라며 툴툴거린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당내 분위기가 하나로 모인다면 그 짐을 지겠다"며 원내대표직 추대를 흘렸다. 세 사람은 모두 '너무 힘든 자리여서 맡고 싶지 않지만'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은 원유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섰다가 폭탄을 맞은 뒤 아직은 잠잠하다. 선거 전에 여러 사람이 떵떵거리며 큰소리쳤던 '무소속 복당 절대 불가'를 어떤 모양새로 뒤집을까로 고민이지만, 현재까지는 총선 전 유승민 공천 때처럼 '폼생'(form生)을 기대했다가 '폼사'(form死)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공적인 자리든 꼭 내가 앉아야 하는 곳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나만 아니면 훨씬 나은 사람이 맡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이 세상 이치다. 논어의 맨 앞에 왜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라는 글귀가 있겠는가? 자리 탐하는 분들, 고전 좀 읽으시라.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내는 사람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군자의 반대말은 소인(小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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