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어린이날에 생각한다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어린 사람 괄시하는 오랜 전통 깨버리려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새 낱말 만들어

어른 허영심으로 키워지는 오늘 어린이

100년 전 소년운동 당시보다 행복한가

해마다 5월 5일이 되면 어린이들을 위한 이런저런 행사가 벌어진다. 국가가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여 어른들도 덩달아 하루를 몽땅 놀고 지내게 되는데, '어린이'라는 낱말을 만들고 '어린이날'이 생기게 된 것이 서른세 살에 요절한 한 젊은 선각자의 가슴속 꿈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성환이 지은 〈한국사 천년을 만든 100인〉에 혹시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의 이름 석 자가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 100인 중에 24위에는 김일성이 있었고 63위에는 박헌영의 이름도 있었지만 소파 방정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어서 왜 그런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100인을 선정한 전문가들 10인의 눈에는 방정환이 그렇게 내세울 만큼 큰일을 하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이 되니 더욱 서운한 느낌이 들어, 1963년 지문각이 펴내고 국사학자 이홍직이 감수한 〈표준 국사사전〉을 펴보니 거기에는 소파에 관한 기사가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방정환 方定煥 1899년(광무 3년)~ 1932년 소년운동자, 아동문학가, 호는 소파(小波), 서울 출신 일본 동양대학(東洋大學) 문학과에 재학할 때 〈색동회〉를 조직했으며, 귀국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년운동을 주창했다.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여 '어린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으며, 1922년에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여 어린이를 아끼고 위해주는 운동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학가로서도 공헌이 크다. '저서' 〈사랑의 선물〉 〈소파전집>." 1999년에 장상철'장경희 남매가 편찬한 〈새로 쓴 국사사전〉에는 좀 더 긴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데 이 책에는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짧은 생애를 마쳤다"고 적혀 있다.

옛날에는 '늙은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어린이'라는 말은 없었다.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어린 사람들을 높이기 위해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존중하고 어린 사람들을 괄시하는 이 나라의 오랜 전통을 깨버리고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한국인의 생각에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그날을 공휴일로 삼을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니고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는 한국이 전 세계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방정환을 생각하면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가 떠오른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 보면

내 가슴은 뜁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습니다;

어른인 지금도 그렇습니다;

늙어진 연후에도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살아 뭘 해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타고난 경건으로 얽혀 있기를.(김동길 옮김)

'어른이 어린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인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라. 어린애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 사실이니 노상 틀린 말이 아닐 뿐 아니라 어른은 어릴 때 가졌던 고상하고 용감한 정신을 많이 잃어버린 것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순수하다는 것, 순진하다는 것이 인간의 행복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옛날의 어린이들보다 옷을 잘 입고 먹는 음식도 좋아진 것은 시인한다. 그러나 오늘의 어린이들이 옛날보다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부모가 아이들을 진정어린 순수한 사랑으로가 아니라 어른들 특유의 허영심으로 키우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방정환이 살아 숨 쉬던 100년 전에 비해 오늘의 어린이들은 왜 불행한가 깊이 반성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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