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노동자와 근로자

2년 전 국립국어원 트위터에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쓰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올렸다가 야당과 노동계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삭제를 한 일이 있었다.

처음에 올린 국립국어원의 논리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우리나라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거나 '노동절'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963년 정부에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서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공식 명칭인 근로자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근거는 1992년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에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 표현하라고 적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의 근거로 '부정적 의미 내포'를 들었다. 한마디로 노동자라는 말은 계급적이고 좌파적인 시각이 들어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근로자라는 말을 사용하라는 것이다.(일제가 '근로정신대'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근로'라는 말에도 흑역사가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권익이 신장되면서 정부에서 근로자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당사자들은 노동자라는 말을 선호했기 때문에 1993년 순화어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노동자'나 '근로자'는 어감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노동'(勞動)이라는 말과 '근로'(勤勞)라는 말의 차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동'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로 풀이가 되어 있다. 오늘날 자신의 생계를 위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의 정의에 부합한다. 사회학에서 하는 정의로 보면 노동자는 자본이나 토지, 설비와 같은 생산 수단이 없고, 오로지 노동력만으로 생산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근로'라는 말은 사전에 '부지런히 일함'으로 풀이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근로자'는 그냥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으로 직업이라는 개념이 약하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사용된 예를 볼 때도 노동이라는 말이 일반 백성에게만 쓴 것과는 달리 근로라는 말은 '경이 나라를 위해 근로하느라', '짐이 개국하느라 근로하여'와 같이 왕이나 신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근로에는 직업인으로서의 권익보다는 희생도 감수하면서 그저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1970년대 산업화를 이끈 주역들을 근로자라고 하는 것은 어색하지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말이 어감에 차이가 있는 것은 대상이 가리키는 범주와 직업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동이든 근로든 일을 한다는 것은 모두 신성한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