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한국판 양적 완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의 이른바 '자동차 빅3'는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GM을 비롯한 포드와 크라이슬러 등 빅3는 정부에 34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구걸했다. 여론은 따가웠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청문회에 나타난 꼴부터가 뭇매를 맞았다. 방만한 경영과 전미자동차노조(UAW)를 등에 업은 노조에 대해 '내 세금을 한 푼도 줘선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의회는 단호한 자구계획을 요구했다. 정부 역시 '빅3가 경쟁력을 갖춰 빚을 상환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빅3'는 CEO 임금 삭감과 더불어 과감한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자구계획서를 내놓았다. 노조도 고통 분담을 약속했다. 3사 CEO들은 우선 연봉을 1달러만 받기로 했다. GM은 북미지역 근로자를 34% 줄이고, 딜러도 1천750곳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임금 및 복지를 줄이기 위해 즉각 UAW와 협상에 들어가고 보유 중이던 전용기도 팔겠다고 했다.

백악관은 자구 계획을 검토, 회생을 확신한 후에야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자구계획은 충실히 이행됐고 미국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사상 최대 판매 실적을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 빅3' 구조조정 논란이 한창이다. 파산 위기에 몰린 '조선 빅3'에 대한 지원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책은행인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지원하느냐, 아니면 정부가 세금을 들여 지원하느냐를 두고 다툼이 있을 뿐이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경영진과 노조가 고통 분담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진해운 최은영 전 회장 모녀는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발표 하루 전 보유 주식을 모조리 팔아치웠다. 3조원의 부실을 분식 처리했던 대우조선해양 전 사장은 21억원을 받아 나갔다. 누적 적자가 심각한 현대중공업 전 경영진은 거액의 보수와 퇴직금까지 챙겼다. 노조라고 뒤질 리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 와중에 구조조정 반대, 임금 인상을 내세우며 임단협 투쟁을 예고했다.

조선사 구조조정은 이대로 가면 공멸이라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조선 3사의 선박 수주 실적은 지난달 사상 처음 '0'을 기록했다. 회사가 거덜나도 제 몫은 챙기겠다는 경영진이 있고, 고통 분담 의지가 사실상 없는 노조가 있다. 이런 업계에 정부는 어떤 모양새로 돈을 줄 것인가를 두고 다투고 있다.

국민들은 그 누구도 공통 분담 의지가 없는 이런 구조조정에 한 푼도 내 세금을 내놓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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