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 씨를 대담에 초대했다. 국민가수로서 만난 게 아니다. 2013년에 세운 다문화 대안학교 의 이사장으로서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기 전 '얼마나 특별한 것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성공 뒤에 다시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것과 같이 가수 인순이도 '이런 일을 하는가 보다'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부자는 부자가 되는 순간 가난했던 기억을 지울 수 있지만 인종과 피부색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성공한 혼혈인이 다문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자신의 성공으로 잠시 잊었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이었다. 큰 아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가수 인순이의 아픈 이야기, 그것을 넘어서는 기쁨과 보람을 매일신문 서울지사(프레스센터)에서 생생하게 들어보았다.
김병준: 보기 좋으시다. 체력 관리와 몸 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것 같다.
인순이: 열심히 한다. 오래오래 노래하고 싶다. 노래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나는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 변하는 모습이야 어쩔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병준: 그래도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인순이: 심란해질 때는 운동이 최고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왔을 때 공연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한동안 TV 앞에만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 한심했다. 그래서 보디빌딩을 했다.
김병준: 보디빌더 대회에 출전한 것 말인가?
인순이: 그렇다. 나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시작했다. 거울 앞에 접착 메모지를 수십 장 붙였다. '이러다가 잊힌다' '나를 컨트롤 하고 싶다' ' 나를 이기고 싶다' 3개월 동안 지독하게 운동하고 대회에 나갔다. 등수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김병준: 솔직히 나이도 있는데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인순이: 막상 무대에 올라가기 20분 전에는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내 인생,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면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라섰다. 특히 보디빌더 복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도 "스포츠인데 뭐가 문제냐"며 나 자신을 설득했다.
김병준: 하고 계신 또 하나의 도전, '해밀 다문화 대안학교'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해밀'이 무슨 뜻인가?
인순이: '비가 온 뒤에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이다. 순우리말이다.
김병준: 소리가 곱고 뜻도 고운 말이다.
인순이: 많은 분들이 '다사랑' '다무지개' 등 '다'가 들어가는 이름을 제안해 주셨다. 다문화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우리 사회와 더 떨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사전을 찾고 인터넷을 뒤져 '해밀'을 찾았다.
김병준: 학생은 몇 명이나 되나? 또 주로 어떤 아이들인가?
인순이: 중학교 과정 20명 정도다. 절반이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나머지는 한국인가정 출신으로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상태로 입국한 아이도 있고,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 아이도 있다.
김병준: 한국인 학생들을 함께 받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인순이: 다문화 아이들도 어차피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 같이 지내며 배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한국 학생들도 아픔이 하나둘씩 있는 아이다. 서로 아껴주고 밀어주며 자라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병준: 어떻게 강원도 홍천군에 자리 잡았나?
인순이: 경기, 충청 등 다른 곳도 생각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강원도 전'현직 도지사와 교육감이 손을 잡아주었다. 원래 마을 공동시설이었던 김치 체험관을 리모델링해서 우선 쓰고 있다. 4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병준: 우선 쓰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다는 말 아닌가?
인순이: 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폐교 하나를 5년 분할로 샀는데 건축비를 다 마련하지 못해 아직 짓지 못하고 있다. 후원금을 열심히 모으고 있지만 아직 2억원 정도 모자란다. 올 7월에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병준: 기숙학교, 즉 먹고 자고 하는 학교인데 전액 무료로 운영하다니 힘이 보통 드는 게 아닐 것 같다.
인순이: 그렇다. 우선 선생님들이 애를 먹는다. 24시간 같이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며 또 품어 주어야 한다. 그러고도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 그야말로 헌신이다. 나도 적극적으로 기부금을 내지만 후원자 도움이 없으면 운영이 어렵다.
김병준: 어떻게 이런 학교를 하기로 하셨나?
인순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에 덮어쓰인 모양이라고. 전혀 모르는 분야 아니냐. 나 자신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김병준: 평소에도 사회적 기부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인순이: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나이 들어서도 열정 가득한 젊은 가수들과 함께 활동한다는 게 기적 같은 일 아니겠나.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5월이면 양로원을 생각했고, 어려운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12월이면 아이들을 위한 일을 생각했다. 5월은 양로원, 12월은 아이들, 한동안 그렇게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김병준: 그런데 어떻게 학교를?
인순이: 2010년 라디오를 듣는데,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28%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간 내가 살아온 길이 생각났다. 동시에 아이들이 겪을 어려움과 정체성 혼란,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이 떠올랐다. 하지만 멈칫했다.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병준: 비용 때문인가?
인순이: 돈이나 숫자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는 편이다. 얼마나 들어갈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없었다.
김병준: 그러면 어떤 문제였나?
인순이: 피부색이나 인종은 세탁할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아니, 잊은 것처럼 살고 싶었던 거다. 너구리가 구멍 속에 머리를 넣고 스스로 잘 숨었다고 하듯 나 역시 '성공한 인순이'란 구멍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애써 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하지?" "왜 내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이런 문제였다.
김병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순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또 여기저기 후원과 도움을 요청하려면 내가 아팠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냥 잘난 듯이 "아이들이 불쌍해서 이걸 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두려웠다. 나 스스로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또한 내 자식과 시집 식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걱정스러웠다.
김병준: 다시 한 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순이: 나 자신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너도 아이 키우는 엄마 아니냐?"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도 아직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니?" "너 자신 없어? 네 가슴속이 어떻든 남들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고, 심지어 당돌하게까지 살아오지 않았니?"
김병준: 스스로 어떻게 답하셨나?
인순이: 내가 세상에 빚을 갚는다면 이 일이 가장 '예쁜 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슴속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는 꺼낼 수 없는 것, 이것이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상처도 아픔도 다 내어 놓자. 모든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자."
김병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고민이었던 것 같다.
인순이: 힘든 결정이었다. 솔직히 그랬다.
김병준: 교육 내용이 일반 학교와 많이 다를 것 같다.
인순이: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기본은 똑같이 가르친다. 검정고시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추가되는 것이 많다.
김병준: 어떤 과목이 추가되나?
인순이: 일례로 농사를 짓는다. 씨를 심은 후 싹이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며 기다림을 배운다. 심한 바람과 비는 행여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측은지심을 가지게 한다. 또 열매를 수확해 팔러 나갔을 때는 시장과 돈을 배운다.
김병준: 그야말로 큰 교육이 되겠다.
인순이: 다른 것도 여러 가지 한다. 국토순례를 하고 태권도, 수영 등을 배운다.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끝장토론을 하고, 각기 다른 의견을 지혜롭게 다루어 나가며 스스로 규율하는 법을 만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휴대폰에 너무 매달려 있지 않기 위해 평일 사용 금지 규정을 학생들 스스로 만들었다.
김병준: 이런 걸 누가 다 지도하고 보살피나? 전임교사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인순이: 많은 분들이 돕는다. 운동은 청소년 수련관과 동네 태권도 체육관에서 도와주신다. 옆에 군부대가 있는데 이곳 군인들이 토'일요일에 국, 영, 수 보충수업을 해주신다. 동네분들 역시 때때로 농사 관련 강의를 해주신다. 옛말에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동네가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더라.
김병준: 사실 다문화 아이를 대안학교에 모아 따로 가르치면 사회 적응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걱정할 게 없겠다.
인순이: 대안학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지역이 있는데 우리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개교기념일을 비롯한 의미 있는 날에 동네분들을 모셔서 잔치를 하는데 삼겹살 같은 것을 잔뜩 사 오시는 분들도 있다.
김병준: 아이들은 어떤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나?
인순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말을 못 하는 아이도 6, 7개월이 지나면 움츠리고 있던 모습이 사라진다. 친구들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선생님과 다투기도 한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감사하다.
김병준: 공부하는 건 어떤가?
인순이: 검정고시 합격률도 비교적 높다. 검정고시가 되면 다 배운 줄 알고 학교를 그만 다니려고 해서 탈이다.(웃음)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도 비교적 잘하고 있다. 학생회장을 맡은 아이도 있다.
김병준: 바쁜 일정 때문에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지는 못하실 것 같다.
인순이: 그렇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웃음). 또 후원자를 찾아다니기도 해야 한다.
김병준: 아이들이 연예인이라 특별히 대하지 않나?
인순이: 첫 대면 때는 그런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만 지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 같이 트레이닝 바지 입고 다닌다.
김병준: 어떤가? 우리 사회가 다문화가정에 대해 좀 더 잘 해주어야 하지 않나?
인순이: 어디 다문화가정만 어렵겠나.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는 조손가정 아이들은 더 힘들다. 그래서 다문화 아이들에게 말한다. 한국 아이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강하게 살라고 한다. 사실 상처에 굳은살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한다. 그것 외에는 길이 없다.
김병준: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 아닐까?
인순이: 세탁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것을 어떡하겠나.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가슴 아픈 돌덩이로 안고 갈 것인가, 아니면 때때로 스쳐가는 바람처럼 안고 갈 것인가는 다르다.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스쳐가는 바람처럼 안고 갈 수 있다.
김병준: 다문화가정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어렵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절망하고 있다. 다시 한마디 더 해주시면?
인순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알고, 내 그릇에 맞는 꿈을 가꾸어야 한다. 소극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장미를 보고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가시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자신의 한계와 상처를 얼마든지 긍정적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작은 꿈이 큰 꿈으로 커갈 수 있다.
김병준: 어렵게 사는 분들에게 노래 한 곡을 권한다면?
인순이: 당연히 이다.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을 얘기한다. 꿈을 사치라고 여기지 말고 나를 키우는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라고 여기면 좋겠다.
김병준: 많은 것을 배우는 자리였다. 귀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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