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하고 회사에 남겨둔 이익의 일부
현금 아닌 투자된 유무형자산 형태
성장 위한 재투자'위기 대응에 활용
탈세'임금 착취 목적 유보금은 막아야
조선업과 해운업 등 경쟁력 한계에 봉착한 대한민국 산업계에 구조조정의 한파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으나, 정부나 대주주'경영진'근로자'채권금융기관 등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신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모습이다.
누구를 옹호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비판을 해야 타당성이 있다. 그런데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 유보금 전부가 은행에 예금으로 묵혀놓은 것처럼 사실 관계에 대한 왜곡이 지나치다 싶을 지경이다. 특히 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대표적인 조선회사인 H중공업 노조가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회사 비난의 근거로 삼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서 배당 등을 하고, 회사에 남겨둔 잉여금을 의미한다. 논란이 되는 H사의 별도기준 재무제표상 2013년 말 기준의 이익잉여금은 15조원이었다. 그러나 15조원이라는 돈을 모두 현금으로 쌓아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같은 시점의 현금성 자산은 7천억원에 불과하다. 장단기금융상품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2조원 수준이다. 오히려 운영자금이라 할 수 있는 매출채권 등이나 재고자산이 12조원에 이르고, 설비투자와 R&D 등에 투자된 유무형 자산이 8조원이나 된다.
기업이 고용을 하고,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H사의 경우에도 운전자금과 설비 등에 투자된 자금이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보니 수만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많은 협력업체와 하청업체가 공생하는 가치 사슬의 경제생태계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자금을 은행에서 차입하고, 회사채를 발행해서 모두 부채로 조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가능하다면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동양그룹 등 부실기업들이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였으나, 제대로 갚을 능력을 갖추지 못해 사회적으로 큰 고통을 야기한 것을 모두가 목도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내유보금은 대주주나 경영진이 돈을 빼돌리기 위해 쌓아두는 것이기보다는 농사에 꼭 필요한 저수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옥토를 가꾸기 위해서는 저수지의 물을 끌어다 써야 하는 것처럼,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사내에 유보하여 재투자의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오히려 은행 같은 경우에는 BIS 비율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배당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또한, 가뭄이 들었을 때는 저수지의 수문을 활짝 열어 말라비틀어진 들판을 축이듯이, 불경기가 닥쳐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을 때는 결손금을 이익잉여금에서 우선적으로 상계한다. H사의 경우에도 2014년과 2015년의 경우 총 4조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나, 2013년까지 쌓아둔 사내유보금 덕분에 부채비율이 2013년 말의 110%에서 2015년 말에는 140% 수준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시기에 중소형 조선회사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채권은행 등으로부터 출자전환 등 많은 지원책을 받고서도 재기의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규모나, 경쟁력에 기인하겠으나, 회계적으로 보면 제대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지 못하여 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지난 IMF 경제위기나 글로벌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위기를 헤쳐 나갈 여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은 대부분 소멸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면 선제적으로 긴축 경영을 하고 있다.
물론 탈세와 임금 착취,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로 불필요하게 많은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는 것도 우리나라 경제의 건강한 발전에는 해악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2014년 도입된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재정비하여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건전한 투자가 촉진되도록 세부규정을 좀 더 꼼꼼히 정비하는 노력도 함께 병행해야 하겠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