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강경옥(가명'71) 씨. 평생 아내, 어머니로 헌신만 하며 살아온 경옥 씨는 지금까지 눈 한 번 깜빡거리지 못한 채 누워만 있다. 경옥 씨는 얼마 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사 음식을 준비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남편은 마지막까지 가족을 위해 일하다 결국 병을 얻은 아내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 견딜 수 없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작별인사도 못한 채 아내를 떠나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늘 마음을 졸인다. "아내가 병원으로 오고 나서야 힘들다는 소리 없이 묵묵히 가족을 지킨 아내의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부터는 제가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줄 거에요."
◆풍족했던 젊은 시절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경옥 씨의 집안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경옥 씨의 친가는 고기잡이 배 수척을 갖고 있었고, 이를 어부들에게 빌려 주며 큰돈을 벌었다.
어린 시절 경옥 씨의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이런 남매들에게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워주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일상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자녀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물심양면 보살폈다. 당시 동네 또래 여학생은 꿈도 꾸기 어려운 고등학교 공부까지 시켰을 정도였다.
그러다 학창 시절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경옥 씨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다. 아버지 없이 어린 남매들이 사업을 끌고 가기엔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다. 결국 경옥 씨의 오빠가 아버지 재산을 밑천으로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다른 남매들은 결혼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 무렵 경옥 씨는 집안 식구들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대구로 왔다. 그때부터 부부의 빠듯한 살림이 시작됐다. 남편은 연중 쉬는 날 없이 일만 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형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주로 시장이나 노점을 차려 과일을 팔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40대로 접어들면서 남편은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보일러 수리 기술을 배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기술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동딸을 출가시킨 뒤부터는 경옥 씨도 일을 시작했다. 용돈이라도 벌고자 화장품 외판원으로 취직해 낯선 집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평생 주부로 살아온 경옥 씨에게 판매원 일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욕설을 들으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웃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매번 화장품 구매를 권유하다 보니 오랜 친구들은 경옥 씨와 점점 멀어졌다.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 곱게 살았던 사람인데 괜히 저에게 시집와 힘든 생활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해요. 평생 살면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출가한 딸마저 형편 어려워져
사실 부부는 출가한 딸에게 건 기대가 컸었다. 사위는 괜찮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딸은 두 아이를 열심히 키우며 똑 소리 나게 살림을 했다.
그러다 5년 전 사위가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딸도 고달픈 삶을 살았다. 사위가 퇴근길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평생 누워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았던 딸은 졸지에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됐다.
초등학생이었던 두 손자는 엄마와 아빠가 없는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딸은 식당, 공장을 오가며 생활비를 벌었다.
"외동딸을 출가시키고 이제는 좀 홀가분해지겠다고 생각했는데'''. 딸마저 힘든 상황에 놓이니 더욱 막막했어요. 더 슬픈 것은 자식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부모가 돼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 거에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
그러던 지난 3월이었다. 경옥 씨는 여느 때처럼 친척들이 모두 모인 집에서 제사 준비를 했다. 남편은 점심을 먹은 뒤 아내가 방에 들어가 쉬는 시간이 길어진다 싶어 방문을 열어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쓰러져 있는 경옥 씨를 발견했다. 사람이 없는 방에서 홀로 정신을 잃으며 가족을 찾았을 아내의 심정을 떠올리면 남편은 아직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평생을 힘들게 산 아내가 마지막까지 집안일을 하다 정신을 잃은 게 더욱 안타깝다.
경옥 씨는 바로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됐지만 병원에서는 경옥 씨가 의식을 언제 회복할지, 입원 기간이 얼마나 이어질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남편이 지금 걱정스러워하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다. 지난 3월 입원해 두 달 만에 1천200만원이 넘는 병원비가 나왔다. 이것도 부부가 기초생활수급자임을 감안해 절반 이상 줄어든 비용이다. 아내의 병원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앞으로의 병원비가 더욱 걱정이다.
현재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부부의 앞으로 나오는 한 달 지원금은 약 50만원. 경옥 씨의 병원비와 남편의 생활비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위가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 형편이 어려운 딸도 부양의무자격을 포기한 지 오래다.
"평생 고생만 했는데 곁에서 지켜줄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게 너무 가여워요. 아내가 회복해 눈이라도 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