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중략)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 나 이제 늙은 짐승 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 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쫓기고 쫓겨 까마득한 벼랑으로 접어드는 내 뒤에 또 한 마리 산양이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 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이건청의 부분)
가정의 달, 5월이다. 유년의 기억 한 자락. 아이들과 마을 한쪽에 있었던 성황당에서 자주 숨바꼭질을 했다. 술래가 찾지 못하는 깊은 어둠 속에 숨어버리는 건 언제나 쾌감으로 다가왔다. 목적지로 달려가서 살아나는 것보다도 영원히 찾아내지 못하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오히려 행복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란 존재도 사라지고 내가 어둠 속에 녹아들어 어둠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해 해 질 녘까지 거기에 웅크리고 있다가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혼자 집으로 돌아온 적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술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나무 위로 올랐다. 나무 위에 올라 누워 있으면 아래쪽에선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달려온 생각. '날고 싶다.' 내면에서 솟아나는 비상에 대한 욕망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비상의 자유로움과 행복. 난 잠시 그 기쁨을 만끽했다. 순간, 턱에 심한 충격이 느껴졌다. 바위가 턱을 심하게 때렸다. 손에 느껴지는 끈끈한 액체.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이 주위에 몰려들고 몇몇 아이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우리 집으로 달렸다. 아버지가 오시고 아버지 등에 업혀 비학산에 핏빛으로 물든 노을을 보면서 그 노을과 같은 색을 지닌 피를 흘리면서 읍내로 갔다. 아버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꼭 누르고 있으래이'하는 말. 신기한 건 그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는 것. 잠시라도 비상할 수 있었다는 마음의 느꺼움과 여유였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무뚝뚝하게만 느꼈던 아버지의 등에서 전해오는 따뜻함 때문이었을까. 그 흉터는 여전히 내 턱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흉터는 내 상처가 아니라 추억이다. 언제나 내 가슴을 물큰하게 하고 시큰하게 만드는 그것. 그 이후 난 단 한 번도 비상하지 못했다. 비상에는 필연적으로 추락이 예정되어 있음을 너무나 일찍 인식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아버지가 그 많은 비탈길을 먼저 걸어가시면서 내 길을 만들고 계셨다는 것을. 언제나 까마득한 벼랑으로 내몰리고 계셨다는 것을.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엄숙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세월이 지나서야 느끼는 엄숙함. 난 그냥 뒷짐 지고 아버지가 설정한 좌표를 따라 걸어갔던 어린 초식동물이었음을. 내 뒤를 따르는 초식동물에게 난 제대로 좌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두렵다. 어머니의 제사를 모셨다. 신기한 것은 시간은 슬픔의 무게를 줄인다는 점이다. 남은 자들은 모두 삶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이제 나도 고아다. 고아라고 하니까 옆에서 아내가 핀잔을 준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별로 말씀이 없으시고 무뚝뚝하신 아버지, 그러면서도 어머니보다 더 여린 마음을 지니신 아버지, 내 정서가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닮았다는 생각에 그냥 싫기도 했던 아버지. 이제 두 분은 하늘에서 알콩달콩 부부싸움을 하며 살고 계실 거다. 아버지는 왜 벌써 왔느냐고 핀잔을 주고 어머니는 왜 그렇게 일찍 가셨느냐고 대응을 하면서 말이다.
등단하면서부터 40년이 넘게 서정의 정통성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시인 이건청, 폐허와 소외 속에서도 자기절제의 미학을 잃지 않으려 했던 이건청. 어쩌면 그것이 우리 아픈 현대사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리움 같은 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힘들게 사신 두 분, 하늘에서나마 편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어머니… 턱에 남은 흉터처럼 내 눈부신 상처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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