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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참여마당] 수필: 그때가 그립습니다

# 그때가 그립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라도 지난날의 멋진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유일하게 즐거움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산과 들판으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고통스러울 때 지난날들의 자리 잡은 마음에, 그때의 새겨진 풍경들을 끄집어 내어 마음을 환기시켜주곤 했다. 나의 유일한 보배이다. 그런 추억이 없었으면 아마도 지금쯤 삭막한 혼선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다.

아담한 기와집에 탱자나무 담장 사이로 솔솔 부는 봄바람들이 언 마음을 녹여주곤 했다. 얼금얼금한 탱자나무 가지 사이로 바깥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확 트인 시야는 한층 마음을 고조시켜주었다.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탱자열매를 한 모금 입에 물면, 침이 물씬 쏟아져 나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물이 흘러나올 정도이다. 겨울이면 아버지께서 잘라 군불을 짚으면 왜 그렇게 훨훨 타는지, 말리지도 않아도 마른 잎이 타는 듯했다.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넣고 사랑채에서 온갖 세상살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다운 이야기들. 착하고 바르게 어른들 말씀 잘 듣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 달라고 말씀하시던 덕담들. 지금 그 밑거름으로 이렇게 건강한 마음으로 잘 사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이야기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이 많이 난다.

구수한 옛날이야기는 TV, 인터넷에 너무 익숙해져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아서 약간은 걱정이 된다. 옛 풍경이 이제는 되살아날 수 있을까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보게 한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펼쳐져 있었다. 봄이면 여기저기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을 마주하면서 진한 꽃의 향기에 취해보기도 했다. 온 산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를 보면서 꽃을 무척 좋아하는 소녀가 되고 말았었다. 지금도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때 아름다운 꽃들의 멋진 풍취에 길들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다들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늘 우아한 자태를 음미하면서 살아가니까 저절로 꽃다운 마음씨를 가지는 것 같다.

언니가 야생화 이런저런 넝쿨나무 노랑, 빨간, 보라색을 한 다발 꺾어서 요리조리 예쁘게 엮어 월계관을 만들어 주었다. 승자가 된 기분이었다. 꽃다발 하나에 마냥 신이 났던 시절에 그 선물이 최고인 양 즐거웠다. 머리에 쓰고서 풀숲을 뛰어다니면서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운동화도 아닌 꽃고무신으로 콧노래를 즐겨 부르면서 최고 행복을 가진 소녀처럼 좋아했다. 지금은 멋진 운동화 메이커 신발도 이 꽃고무신만큼의 흥겨움이 있으랴. 순수한 마음이 세속에 묻혀 살면서 물질에 퇴색 버렸을까. 물질에만 잣대로 판단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잠시나마 때 묻지 않는 과거로 정신적인 여행을 떠난다. 좋은 옷, 좋은 승용차도 부럽지 않았고, 토끼풀 반지 하나에도 그렇게 아름답고 즐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한번 되돌아가고 싶다. 어른이 된 지금 그때의 환경을 받아들이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궁금해진다.

마음이 때가 묻었을까, 세상이 너무 변해버렸을까. 두 갈림길에 서서 살아 오염된 어른의 모습이 가끔은 싫어질까 두렵다. 겹겹이 세월의 두터운 무게에서 지나간 세월이 더 멋지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꾸 밀려오는 어린 날의 풋풋한 추억의 여행은 나를 새롭게 성숙시켜 주는 느낌이다. 지금도 자꾸자꾸 크게 만들어 준다. 육체는 나약해 가는데 마음속에 간직해둔 어린 시절의 철모르고 뛰어놀던 추억은 자꾸만 동그랗게 여울져온다. 마음이 서글퍼질 때면 그때로 마음껏 달리며, 힘이 샘솟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잠시나마 마음을 적시며 살아야겠다.

장명희(대구 달서구 성서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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