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보니 새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었다. 마당에도, 장독대에도, 초가지붕에도, 온 세상이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밤새 눈이 내린 모양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참 기분이 좋았다. 어른들은 마당이나 골목에 나가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 생각으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었다.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노래를 배웠다.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 동요이다. 노랫말을 쓴 이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곡을 만든 이는 박재훈이다. 그는 목사였는데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눈이 내리는 날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골목으로 몰려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뛰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달성공원으로 달려갔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달리기도, 눈을 뭉쳐서 던지며 눈싸움을 하기도, 눈밭에 드러누워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눈사람을 만든답시고 눈을 뭉치기도 하였다.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던 철부지 시절 이야기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시를 읽고, 시인들도 알게 되었다. 향토의 시인 하청호의 동시 가운데 「함박눈」이라는 시가 있다. '누가/ 하얀 종이학을/ 고이 접어/ 저리도 날리는가// 무슨 소원이 있어/ 찬바람 이는/ 겨울 하늘에서/ 저리도 날리는가// 하늘과 땅에/ 가득히 날리는/ 수, 수만 종이학/ 함박눈.' 참 아름다운 시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내일을 향한 꿈도 야무지다. 그래서 하얀 종이학을 접고, 거기다 소원을 담아 날려 보낸다. 찬바람 이는 겨울 하늘에다 날려 보낸다. 펄펄 눈이 오면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떡가루를 뿌린다고 노래하면서.
눈은 더러워진 세상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꿔놓는다. 잠시나마 사람들의 찌든 마음을 밝고 환하게 정화시켜 준다. 그래선지 연인들은 첫눈을 손꼽아 기다린다.
◇1957년
▷우리말 큰사전 완간=10월 9일 한글학회가 사전편찬에 착수한 지 30년 만인 이날 '우리말 큰사전' 전 6권을 완성했다. 우리 민족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927년 '조선어 사전' 편찬논의가 시작되어 1929년 10월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등 108명이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우리말 큰사전 완간의 밑거름이었다.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한국 최고의 미인을 뽑는 제1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5월 19일 개최됐다. 대회 주최사인 한국일보가 4월 6일 1면에 미스코리아 대회 개최 사고를 냈다.
▷가짜 이강석 사건=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였던 이강석을 사칭하며 고관들을 농락하던 가짜 이강석이 1957년 9월 1일 검거됐다. 그는 검찰조사에서 "가관입니다. 용돈이 궁해 연극을 해본 것뿐인데, 귀하신 분이라며 굽실거리고 쩔쩔맬 줄은 몰랐습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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