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을 담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자기희생 없이 이뤄지는 성과는 없다.'
류목기(83)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이 늘 마음에 새기는 경구다. 그의 삶은 이를 실천해온 과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금은 안동 임하댐 수몰지구가 된 임동면의 산골, 전주 류씨 집성촌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난 그의 집안은 척박한 땅 몇 마지기로 여섯 식구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한 형편이었다.
중'고교 시절 형의 단칸 신혼집에 얹혀살았던 그는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가정교사, 입시문제집 판매 등 아르바이트로 휴학, 복학을 반복하다 6년 만에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이후 행정공무원, 교사, 병원, 여행사, 금융업, 제조업 등 다방면의 사회경험을 통해 '모자이크 인생'을 살아왔다. 어떤 분야든 사심 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최선을 다한 결과 그의 인간 됨됨이와 경영능력이 높이 평가됐고, 여기저기서 전문경영인으로 '러브콜'이 들어왔다.
류 회장은 "'어떤 분야든 경영원리는 모두 똑같고 서로 통한다'는 것이 숱한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경영철학"이라고 말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기본에 충실하고 ▷사심을 버리고 ▷원칙을 지키며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20대부터 50년 이상 매일 새벽 5시쯤 연세대 뒷산을 오른 그는 지금도 60대에 뒤지지 않는 건강을 보여 주고 있다. 팔순을 훌쩍 넘기고도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는 류 회장의 삶의 역정을 들어봤다.
◆학창시절, 어머니 같았던 형수
학창시절 그에게 8살 위인 큰형과 형수는 그야말로 아버지, 어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형의 단칸 신혼집에 얹혀살며 형수의 뒷바라지를 받았다. 결혼 전 교편을 잡았던 형수는 시동생의 숙식과 빨래는 물론 가정교사 역할까지 도맡았다. 형수는 호롱불 밑에서 시동생에게 글짓기와 교과 과목을 가르쳤고, 이 뒷바라지는 고교까지 이어졌다. 대학 입학금이 막막해지자, 쌀 열 가마니 값에 맞먹는 1만6천700원을 친정에서 마련해주기도 했다.
대학 입학 뒤 생활비와 등록금은 오롯이 류 회장의 몫이었다. 서울에서 당장 숙식이 문제였고, 가정교사는 숙식과 약간의 용돈을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몇 군데 소개를 받아 가정교사를 하면서 등록금까지 마련했으나, 가르치던 아이들이 대학 등지로 입학하면서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대학입시 문제집 영업에도 나섰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학비 마련을 위해 인천 영연방군사령부 PX에 1년여 간 취직하는 등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힘겹게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뒤 총무처가 시행한 국토건설본부 신인등용시험(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충남 홍성군청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고,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서울시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몇 개월 뒤 사표를 내고 당시 국가재건운동본부 직원채용시험에 응시, 3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하지만 민주당에 몸담았던 친구들이 '군사정권의 앞잡이로는 네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만류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 이후 충남 홍성의 산간벽지와 서울시내 초교 등지에서 9년가량 교편을 잡았다.
◆삼성 관련사, 복귀 1호 직원
1969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의 권유로 공직을 그만두고 병원에서 일하면서 그의 모자이크 인생이 시작됐다. 특히 병원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총무과장 시절, 삼성 비서실의 집중감사를 받았던 때가 그의 인생 최대 고비였다.
종합병원 총무과는 모든 이권이 집중되는 곳. 병원 인사부터 의료장비'약품'식품재료 구매까지 모두 담당했다. 특히 약품 구매업무는 복마전이었다. 약품은 상당수 병원에서 도매상을 통해 구매하면서 엄청난 리베이트(뒷돈 거래)가 오갔다.
하지만 류 회장은 달랐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거래를 위해 도매상 대신 제약사를 불러 경쟁을 통해 단가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하니 다른 병원보다 약품가격이 30%가량 싸 병원 경영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 사심을 배제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 비서실 감사팀은 6개월간 표적감사를 벌이면서 별다른 부정을 찾아내지 못하자, 꼬투리를 잡았다. 6개월 감사를 통해 보고거리를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전체 약품 거래의 0.001%도 되지 않은 약국 구매 사례를 들어 단가계약을 통한 구매가와의 차이를 문제 삼았다. 이는 단가계약을 한 제약사가 생산이나 출고 중단 등 불가피한 상황이 생겼을 경우 의사가 주문한 약품을 인근 약국에서라도 구매해야 할 상황으로, 구매가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또 간호사 채용과정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루머가 있다며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도 감사결과에 포함시켰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류 회장은 당장 사표를 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한 나머지 약품 입출고 카드를 몽땅 싸들고 삼성 오너가(家)에 가서 전후 사정을 설명했고, 이 사실이 당시 이병철 회장에게 전해지면서 류 회장은 열흘 만에 병원으로 복귀했다. 이는 퇴직자의 복직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삼성의 대원칙이 번복된 것으로, 류 회장은 삼성 관련사 복귀 1호 직원이 됐다.
◆믿음이 바탕이 된 전문경영인
류 회장의 전문경영인 영입은 모두 믿음이 바탕이 됐다. 1985년쯤 고려병원 행정부원장을 할 당시 친구인 공영토건 회장이 자신의 여행사가 회사 사정으로 직접 운영하기 어렵다며 대신 맡아달라고 떠맡기다시피 했다. 여행사 운영경험은 없지만,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하는 류 회장은 믿을 수 있다는 것.
그는 당시 삼성에서 분리된 한솔그룹의 지분을 갖고 있던 고 이병철 회장의 맏딸을 찾아갔다. 맏딸이 고려병원을 비롯해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신라호텔 등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이 회장의 맏딸을 찾아간 그는 의료법상 비의료인이 병원장을 맡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친구가 여행사를 넘기니 병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류 회장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던 이 회장의 맏딸은 삼성그룹 관련 해외여행 물량의 절반을 그에게 넘겨줬다. 공영토건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기능공 송출이 많았던 터라 삼성 물량 수주와 함께 여행사는 상당한 영업수익을 내며 성장했다.
여행사를 본궤도에 올려놓고 1993년 퇴임한 그에게 한솔그룹 오너가는 금융회사를 맡아줄 것을 또 제안했다. 한솔그룹 오너는 가족회의를 통해 고려병원에서 류 회장이 보여준 투명하고 사심 없는 경영형태에 비춰 류 회장이 금융회사 운영의 적격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솔그룹이 인수한 신용금고는 원 사주와 간부들이 대출을 하면서 상습적으로 1~2%의 뒷돈(대출 커미션)을 받아 챙겼고, 이를 노동조합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온 금융회사였다.
이 신용금고의 운영을 맡은 류 회장은 이전의 금융거래 관행을 완전히 없애고 투명경영과 종업원 복지 확충에 초점을 맞췄다. 대출 커미션을 받은 임원은 해고했다. 매월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익, 손실 등 결산보고를 1년 이상 했다. 또 단계적으로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남녀 직원 간 임금격차를 줄였다.
류 회장의 투명경영에 대해 노조는 "현 경영인을 도와야 우리 몫이 커진다"며 노조 해산을 전격 선언했다.
◆투명경영을 통한 위기 극복
금융회사 대표를 5년여 간 역임한 뒤 퇴임한 그에게 이번에는 풍산에서 경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풍산의 류진 회장은 아버지인 고 류찬우 전 회장의 고향 후배로 교분이 두터웠던 그에게 전문경영인으로 풍산을 키워달라고 했다.
류진 회장은 만류하는 그에게 "다른 것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회사 경영 경험이나 경륜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득했고, 결국 이를 수락했다.
류 회장은 풍산에서도 병원, 금융회사 운영 때처럼 투명경영으로 여러 위기를 극복했다.
대표이사 부회장 시절 IMF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공장 가동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울산 신동공장은 핸드폰, 자동차, 전자제품 등지에 사용되는 합금판의 전 세계 생산량 3위를 차지했지만,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가동률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노조와 담판을 지어야 했다. 회사가 흑자로 돌아설 때까지 대표이사는 연봉을 받지 않겠으니, 노조는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에 동의해달라고 했다. 류 회장은 노조와의 고통분담에 합의하고, 임금을 동결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회사는 점차 정상궤도로 올라섰다.
◇인터넷·스마트폰 '고향 먹거리 팔아주기운동' 참여해요
올해 초 취임한 류목기 재경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은 고향 발전을 위한 봉사를 시도민회의 핵심 역할로 꼽았다.
류 회장은 "시도민회는 기본적으로 친목단체이기 때문에 화합과 단합이 중요하다"면서도 "뿌리가 고향이기 때문에 고향을 위해 뭘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선 고향 먹거리 팔아주기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출향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경북 23개 시군의 농축산물을 효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시도민회가 앞장서겠다는 것. 또 이번 20대 대구경북 출신 총선 당선자들과의 네트워크도 강화해 지역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류 회장은 "시도민회와 지역 출신 장관모임인 '대경회'가 추진해온 재경 대구경북학사 건립이 진척을 보이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며 "고향 후학들을 위해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임원들과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