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전통과 변화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고풍스러운 곳을 여행하며 '이런 곳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한적한 시골마을부터 도심까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양식의 건물들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고, 주변 자연환경과도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보고 감탄한다. 

유럽에서는 건축물 규제가 심하다. 옛 도시가 아무리 낡은 모습일지라도 도로에 깔리는 돌멩이 하나라도 보존하고 건축물 외부의 모습은 전통적 양식 그대로 꾸민다. 또한 건물 높이, 도색, 각종 사인물, 재료까지 규제하며 철저하게 보존하고 있다. 큰 도시에 가 보면 구도심과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어 전통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존의 삶과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유럽인들의 의식,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 가옥으로 도심을 모두 꾸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 디자인에서 각각 건물의 시각적 아름다움만 생각하고, 주변 환경을 보지 못한다. 지역의 전통에 근거하여 친근함과 아늑함을 주는 심플한 디자인, 주변 환경을 배려하는 디자인, 지역만의 특별한 가치를 생각하는 디자인으로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따질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도시 디자인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을 양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과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다. 도시의 경관을 생각할 때, 한 건물의 화려함보다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미적 감각을 고려하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규제개혁'(규제완화)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창의적 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는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공동체 의식이 수반되지 않는 한 전통적 양식과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 도심 사인물의 정리, 도시에 살면서도 꽉 막힌 느낌을 주지 않도록 하는 배려, 건축물의 색깔, 자동차보다는 보행자 위주의 자연 친화적 건물 조성, 전통적 건물 보존을 위한 공원 조성,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공미술품의 구성 등 작은 부분인 가로등 하나를 다루더라도 주변 환경에 맞게 규제를 합리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난립을 막고, '사람이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생활 디자인과 그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도심의 색깔을 입혀, 살고 싶은 지역이 유럽이 아닌 이곳 대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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