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에서 30년째 기계부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정훈(가명'65) 씨는 최근 거래 은행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운영비로 1년 전에 대출받은 5억원을 갚으라는 통보였다. 매출실적이 그리 나쁜 편도 아니어서 통사정을 했지만 은행 측은 "업체가 은행 자체 신용위험평가에서 부실등급인 7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기존 대출을 갚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씨는 "몇 달 전만 해도 담보가 있으니 괜찮다고 해놓고는 난데없이 전액 상환을 요구하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결국 이 씨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2금융권을 찾아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씨는 연간 이자비용만 4천만원을 더 부담하게 됐다. 은행에서 3.5%에 대출을 받았지만 제2금융권에서는 8%에 달하는 이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한파로 은행들이 대출심사를 깐깐하게 하는 등 돈줄을 죄면서 지역기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조선'해운업 등 부산'경남발 부실 도미노가 경북에 이어 대구에까지 상륙하면서 지역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문턱을 높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무분별하게 고객을 늘리기보다 실제로 수익에 도움이 되는 고객에게만 집중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증대하는 것)에 나서고 있어서다. 지난해까지 중소기업을 상대로 은행 간 치열한 대출 경쟁을 벌였던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DGB대구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은 올해 대출 목표치를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등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특히 부실위험이 있는 기업을 골라내기 위해 은행들이 대구경북기업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고 있어 하반기 이후부터는 더욱 대출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역 한 은행 관계자는 "부실기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한 결과 지역기업들의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실 우려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상환을 요구하고 추가대출을 자제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제2금융권으로 대출을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권의 디마케팅은 일반 고객들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수익 기여도가 낮은 고객들에 대해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을 줄이고, 대출한도를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은행에서 드러내놓고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돈 안 되는 고객은 나가줬으면' 하는 게 현실이다.
한 시중은행 신용담당자는 "지난해 가계대출이 워낙 많아져 부실위험이 높아진 상태라 보수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 고객을 차별하고 외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자산건전성을 높여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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