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가 좋지 않아 치료를 받았다. 동향 모임에서 만난 치과의사가 공교롭게 고교 선배였다. 치료가 끝난 뒤 비용을 내려 하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정 논설위원이 잘하는 것이 무엇이오? 평생 기자였으니 아무래도 글 쓰는 것을 잘하겠지요. 서로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병원 경영은 내 전공이니 내게 맡기고, 정 위원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글을 열심히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렵게 돌아가긴 했지만,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한 것이었다. 큰 신세를 지는 것이어서 부담이었지만, 그 말의 뜻을 되새겨 보니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로서의 체면을 세우면서도 후배의 미안함과 쑥스러움을 우스갯소리로 슬쩍 감춰 주는 배려와 함께 진심이 그대로 느껴져 고마웠다.
최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속 보이는, 그래서 진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을 했다. 20대 국회 원 구성을 위해 야당과 협의하는 자리에서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야당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탈당파 무소속 당선자를 복당시켜 제1당 지위를 회복하면 국회의장 자리가 돌아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원내대표는 "그건 안 맞다. 선거 결과의 의미를 존중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이번에 새누리당은 원내대표를 확실히 잘 뽑았다. 선거 전 '탈당자 복당 절대 불가'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탈당 당선자의 복당 문제를 논의했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유승민, 윤상현 당선자 때문이다. '계륵'이 된 이 두 당선자는 이번 총선의 큰 관심사였지만, 선거가 끝나도 새누리당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제1당과 국회의장 자리를 '잠시나마' 포기할 만큼 살집이 더 붙은 셈이다. 그러니 정 원내대표의 '선거 결과의 의미 존중'은 립서비스일 뿐 진심은 담겨 있지 않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교언영색은 아닐 것이다. 천냥 빚을 갚을 만한 말은 그 안에 진심이 들어 있어야 한다. 물론, 기름칠한 말에 넘어갈 이도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번 총선 결과에 나타난 것처럼 국민의 지성은 어느 때보다 밝고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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