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 어린이 사진전 60돌 기념 회고전]<11회> 강해용 작 '대독'(代讀'1965년

5명 중 4명이 문맹 "편지 좀 읽어주렴"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11회 금상 강해용 작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11회 금상 강해용 작 '대독'(代讀'1965년)

광복 당시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78%였다. 다시 말하자면 5명 가운데 4명이 글을 읽고 쓸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가족 구성원이 다섯이라면, 그 가운데 하나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전체 성인 인구의 1.7%인 비문해자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한 '문해력 부진자'가 5.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는 성인의 7%에 해당하는 약 250만 명에 이른다는 뜻이었다.

한글은 쉽게 배우고 익혀서 쓸 수 있는 글이다. 똑똑한 사람은 한나절이면 깨우칠 수 있고, 보통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사람 정인지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광복이 되고 나서 정부에서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맹퇴치 운동을 벌였다. 오랫동안 꾸준하게 추진하였으나 글을 배우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여자가 글을 배우면 팔자가 드세진다'는 속설로 해서 문맹자가 많았다.

아들이 군대에 가서 집으로 편지를 하였다. 부모는 그 편지를 읽을 수 없었다. 요행히 집안에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라도 있으면 대신 읽어주었다. 이웃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까지 읽어주었고, 내친김에 답장까지 써주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신바람이 났고, 이 집 저 집으로 불려 다녔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숱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죽기 전에 자신의 이름이라도 써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다들 글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거기다 격식을 갖춰 졸업장까지 받으면 무척 흐뭇해한다. 어디 그들뿐이랴. 근자에 이르러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이 부쩍 늘어났다. 마을마다 학교마다 그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치고 있다. 봉사단체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제 그들도 우리 국민이다. 더불어 산다는 말이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1965년

▷월남 파병안 국회통과=1965년 1월 26일 월남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월남 파병안은 찬성 106표, 반대 11표, 기권 8표로 국회에 상정된 지 10일 만에 처리됐다. 이에 따라 2월 비둘기 부대를 시작으로, 1973년까지 8년 동안 청룡부대, 맹호부대 등이 월남에 파병됐다.

▷한일 국교 정상화=한일기본조약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서로 간에 일반적 국교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1965년 6월 22일에 조인한 조약이다. 4개 협정과 25개 문서로 되어 있다. 박정희정부는 그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았다.

▷메사돈 파동=1960년대 국내의 일부 제조업자들이 메사돈을 합성 제조해 설파제(세균성 질환 치료에 쓰이는 화학요법제), 해열제, 비타민제에 혼합해 주사약으로 시판함으로써 사회문제가 되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